역사속 오늘

독일의 베를린 장벽 붕괴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개혁·개방 정책을 펼치고 동구권에 민주화·개방화 물결이 밀어닥치면서 그 견고하던 베를린 장벽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1989년 5월 헝가리가 오스트리아 쪽 국경을 사실상 개방하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헝가리·오스트리아를 거쳐 서독으로 물밀 듯 몰려들면서 체제 붕괴는 단지 시간문제가 됐다. 여기에 “피난민을 10만 명으로 예상하고 있다”는 서독 콜 총리의 발언이 알려지고 헝가리까지 난민을 도우면서 탈출은 ‘현대판 엑소더스’로 발전했다.

동독의 각 도시에서도 연일 반정부 데모가 불을 뿜었다. 10월 2일 라이프치히에서 시작된 1만 명의 시위가 날이 갈수록 규모가 커지는 가운데 10월 18일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이 물러나고 에곤 크렌츠가 후임으로 선출됐다. 크렌츠는 공안출신의 보수강경파 인사였지만 민주화시위에는 유화적인 입장을 취했다. 반정부 시위는 더욱 격화돼 50만(10월 30일), 100만명(11월 4일)으로 점점 불어나 사태가 겉잡을 수없이 확대됐다. 11월 9일, 숨가쁘게 돌아가는 대치 속에서 소련이 “동독에 비공산정권이 등장해도 이를 용인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그날 저녁 7시 동독정부가 “베를린장벽을 포함한 모든 자국경계를 전면개방한다”고 발표하면서 독일에 통일의 서광이 비췄다.

그날 밤 동베를린 시민들은 서베를린으로 통하는 검문소로 몰려갔다. 국경 경비대는 자칫 참사로 발전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인내로 참아냈고 일부 경비병은 탈출러시에 합류했다. 밤 10시쯤 마침내 동베를린 시민들이 검문소를 넘기 시작했다. 1961년 8월 설치 이래 28년 동안 동서독 주민과 세계를 갈라놓은 베를린장벽이 마침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고목나무처럼 쓰러진 것이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