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프랑스 영화배우·가수 이브 몽탕 사망

1991년 11월 9일, 가수 겸 영화배우 이브 몽탕이 70세를 일기로 그를 그토록 사랑했던 프랑스인들의 곁을 떠났다. 시신은 연인이었던 에디트 피아프와 부인 시몬느 시뇨레가 영면해 있는 파리시내 라 르라쉐즈 묘지에 묻혔다. 극성팬들은 전날 밤부터 묘지 밖에서 밤을 세우고, 시신이 장지로 옮겨지는 길가에는 검은 상복을 입은 여성팬들이 눈물을 흘리며 그와의 작별을 아쉬워했다.

이탈리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공산당원인 부친이 파시스트에 쫓겨 프랑스 마르세유로 거처를 옮기면서 그는 3살 때부터 프랑스인으로 살았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할 만큼 가난했던 그는 17세 때 본명을 이브 몽탕으로 바꾸고 가수로 데뷔했다. 빛도 보지 못하고 카바레를 전전하던 23세 때 파리 물랭 루즈에서 만난 6살 연상의 에디트 피아프는 그에게 한 줄기 구원의 빛이었다. 피아프 덕에 국민적 가수가 된 몽탕은 이후 피아프와 사랑에 빠졌고 이들의 관계는 프랑스 사교계의 최대 화젯거리였다. 몽탕은 이후에도 마릴린 먼로와의 염문, 영화배우 시몬느 시뇨레와의 결혼으로 늘 화제를 몰고다녔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그가 안착한 곳은 30세의 젊은 부인 캐롤이었다.

몽탕은 공공연하게 공산주의자를 내세웠던 정치 지향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젊어서 수차례나 모스크바를 드나들며 공산주의 옹호에 열을 올렸으나 1968년 체코 ‘프라하의 봄’에 충격을 받고부터는 반공주의자로 돌아서 죽을 때까지 전체주의에 맞서 싸웠다. 1980년 초 폴란드 자유노조가 반공 투쟁을 시작했을 때는 그다니스크로 달려가 그들 앞에서 샹송을 불렀고, 1989년 중국 천안문 사태 때는 베이징으로 날아가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을 격려했다. 그는 샹송가수나 명배우의 경지를 뛰어넘어 자유와 정의를 실천하는 삶으로 일관했던 ‘거인’이었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