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레닌의 볼셰비키, 러시아에 소비에트 정권 수립 선언… 러시아 10월 혁명 성공

1917년 일어난 2월혁명으로 303년 간 이어온 러시아 제정(帝政)은 붕괴되었다. 그러나 세계사를 흔들어놓을 사회주의 혁명은 여전히 미완이었다. ‘이중권력’ 상태가 시작된 것이다. 한쪽에는 개혁적인 부르주아와 의회세력이 결합한 임시정부가 있었고 반대쪽에는 노동자·병사 소비에트 권력이 또 다른 축을 형성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혁명이 무르익었음을 직감한 레닌과 트로츠키는 망명지에서 페트로그라드로 돌아와 거사를 준비했다. 레닌은 여전히 소비에트 내에서 소수파인 볼셰비키였지만 러시아가 당면하고 있는 각종 문제가 독일과의 전쟁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해 끊임없이 “반전(反戰)”을 외치며 세력을 키워나갔다. 케렌스키가 이끄는 임시정부는 볼셰비키 봉기(7월)와 우파군의 쿠데타(8월)를 어렵사리 넘겼지만 혁명의 시대상황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레닌은 봉기를 선동했고 혁명은 급물살을 탔다. 11월 6일 이른 아침, 혁명의 씨앗을 파종하려는 레닌과 트로츠키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케렌스키가 소비에트 군사위원회 멤버를 체포하려하자 병사·노동자가 무장봉기했다. 노동자 적위대와 병사들은 역, 발전소, 전화국, 무기고, 국립은행 등을 무혈점거하며 혁명의 봉화를 지폈다. 그날 밤 각 정파가 참석한 가운데 제2회 소비에트 대회가 열렸으나 이미 대세는 다수파 멘셰비키에서 소수파 볼셰비키로 기울어 있었다. 참석자 648명 가운데 338명이 볼셰비키를 지지한 것이다. 대회장을 빠져나가는 반(反) 볼셰비키파 등에 대고 트로츠키가 외쳤다. “갈테면 가라. 당신들은 역사의 무덤 속에 버려질 것이다.”

11월 7일 오전10시 군사위가 러시아에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되었음을 선언했다. 이어 혁명군은 동궁(冬宮)을 빼고 페트로그라드 전 시내를 점령했다. 동궁에는 임시정부 각료들이 들어서 있었고 이들은 전선에서 돌아올 원군을 믿고 항복을 거부하고 있었다. 저녁 무렵에는 약 2만 3000여 명의 혁명군이 동궁을 포위하고 동궁 뒤 네바강에는 군함 9척이 대기했다. 오후 9시35분 군함 오로라호가 동궁을 향해 쏜 2발의 포탄을 신호로 혁명군이 물밀 듯 동궁으로 쳐들어갔다. 임시정부군은 맥없이 무너졌고 동궁은 함락됐다. 11월 8일 새벽 2시였다. 세계최초의 ‘노동자·농민의 정부’가 수립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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