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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 공작산 종주… 9시간이나 걸린 힘든 산행인데도 기꺼이 참아준 아내에게 말했다. “고맙고 미안하오!”

↑ 공작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

 

by 김지지

 

공작새 한 마리가 날개 벌려 비상하는 모습 같다고 해서 공작산 이름 유래

공작산(887m)은 강원도 홍천에 있는 100대 명산 중 하나다. 인근의 다른 고산들을 제치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유서도 깊다. 뻗어내린 능선이 공작새 한 마리가 날개를 벌려 비상하는 모습같다고 해서 공작(孔雀)이란 이름이 붙었다.

산행은 크게 정상 중심의 동쪽 코스와 약수봉과 수타사 방면의 서쪽 코스로 나뉜다. 동쪽 코스는 노천저수지 상류의 공작삼거리에서 2~3개 코스 중 한곳을 선택해 정상으로 올라갔다가 원점회귀하는 게 일반적이다. 구체적으로는 공작삼거리 오른쪽의 문바위골로 3.5㎞ 올라가 정상을 찍고 공작릉쪽으로 2.9㎞ 가량을 돌아 내려오거나, 역시 공작삼거리에서 안골을 거쳐 3㎞ 가량을 올라가 공작릉 쪽으로 하산한다. 3~4시간 정도 걸린다. 사람이 많지 않아 산행길이 호젓하고 계곡의 이끼 낀 바위들과 원시적인 모습의 숲길을 맛볼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가보지 않았으니 그렇다는 말만 전한다. 서쪽 코스는 수타사를 출발해 약수봉까지 2시간 정도 걸리는 3.2㎞를 올라갔다가 그곳에서 수타사 계곡의 귕소로 내려와 계곡길을 걸어 다시 수타사로 돌아오는 것이 좋다.

공작산 지도 (출처 홍천군청)

 

당초 계획은 공작삼거리에서 문바위골 코스를 이용해 공작산 정상에 오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2019년 9월 28일 서울을 떠나 홍천군 소재 공작삼거리 부근을 지날 때 도로에 안내판이 분명치 않아 그냥 스쳐지나가고 말았다. 고개에 거의 다다랐을 때 공작산을 안내하는 너른 주차장이 보여 그곳에 차를 주차하고 주변을 살피니 공작현 주차장이다. 이곳이 공작산의 주요 들머리 중 한 곳이라는 것도 그곳에서 알았다. 공작현에서 ‘현’은 고개를 뜻하는 ‘峴’이다.

산행을 시작하는데 입구에서 60대 초반의 동네 주민 둘이서 공작산을 설명하겠다고 나선다. 현 정부가 강한 의지를 갖고 밀어붙이는 노인 일자리의 일환인 듯 싶다. 주민의 설명이 깊이는 없었으나 말투가 정겨워 싫진 않았다.

공작현 들머리. 오른쪽이 공작현이다.

 

발이 아파 10㎞ 남짓 거리가 9시간 이상 걸려

오늘의 일정은 공작현~공작산 정상~안공작재~수리봉~약수봉~수타사 계곡으로 이어지는 10㎞ 남짓의 종주다. 세분하면 공작현 → (2.76㎞) → 공작산 아래 언덕 → (0.12㎞) → 공작산 정상 → (2.01㎞) → 수리산 → (2.71㎞) → 약수봉 → (2.8㎞) → 수타사(용담)이다. 시간은 보통 수준의 등산객을 기준하면 점심시간을 포함해 6~7시간 정도 걸린다. 수타사 계곡 쪽으로 하산한 뒤에는 계곡을 감상하면서 내려가 계곡 끝의 수타사를 둘러볼 계획이다.

공작산 정상까지, 공작현에서는 1시간반~2시간, 문바위골에서는 2시간~2시간 반 정도 걸리니 100대 명산 치고는 심심한 편이다. 하지만 50대 중반 여성과 10㎞ 이상의 거리를 종주한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이 여성은 북한산이나 수락산 정도는 올라갈 정도의 체력은 되지만 속도가 느리다. 바꿔말하면 속도만 느릴 뿐 등정에는 문제가 없으니 종주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공작현에서 9시 40분 등정을 시작했다. 정상까지는 계속 오름길이지만 일부 구간을 빼고는 전체적으로 완경사에 흙산이다. 1㎞ 정도 올라가니 ‘문바위골까지 1.5㎞’라는 안내목이 보인다. 그곳에서 다시 1㎞ 정도 올라가니 ‘안골까지 2.2㎞’라는 안내목도 설치되어 있다. 정상까지 가면서 만난 유일한 등산객은 30여 명쯤 되어 보이는 IBK은행 단체팀이다.

공작산에는 굴참나무가 많다. 평소 눈에 들어오지 않던 굴참나무가 이곳에서는 아름드리여서 눈에 잘 띄고 멋지다. 자세히보니 악어 등처럼 선이 굵고 거칠고 단단한데도 나름 매력이 있다. 굴참나무의 재발견이다. 참고로 굴참나무는 골이 패이는 참나무에서 유래한다. 두꺼운 껍질은 보온과 방수가 뛰어나 지붕 재료로도 사용한다. 신갈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떡갈나무 등과 함께 참나무 형제다.

아름드리 굴참나무들

 

공작현 들머리에서 2.6㎞ 정도 올라가니 ‘공작산 정상’이라는 안내목이 보인다. 그러나 그곳은 정상이 아니고 그곳에서 100m 정도 떨어진 바위산을 우회해야 정상이란다. 하산 때는 다시 이곳을 거쳐 내려가야 한다. 정상에 올라서니 12시 10분이다. 2시간 반 정도 걸렸다. 일반 등산객에 비해 시간이 더 걸렸지만 평소 산을 타지 않는 50대 중반 여성치고는 괜찮은 속도다.

 

100대 명산이지만 멋진 풍경과 탁트인 조망과는 다소 거리 있어

정상은 장소가 좁고 IBK 단체팀에 밀려 금방 내려와야 했다. 대신 바로 옆에 또다른 정상이 있어 그곳에서 사방을 조망하며 정상의 기쁨을 만끽했다. 정상에서 2㎞ 정도 떨어진 수리봉으로 가려면 정상에서 0.6㎞ 급경사를 내려가야 하는 안공작재를 거쳐야 한다. 안공작재로 내려가기 전, 주위가 숲에 가려진 바위 위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우연히 발견한 곳인데 정상보다 전망이 좋다. 식사 후 급경사를 내려가니 안공작재다. 지도상 그렇다는 것이지 현장에는 그런 안내가 없다.

공작산 오르는 길. 완만하고 흙길이다. 오른쪽은 공작산 정상석

 

안공작재에서 다시 급경사를 오르면 헬기장이고 그곳에서 다시 내려가고 오르면 수리봉이다. 공작산 종주는 이렇게 오르고 내리기를 몇 차례 반복한다. 감히 지리산과 비교할 수 없지만 지리산 능선처럼 오르고 내리는 것의 축소판이다. 지리산은 오르고 내리면서 전망이라도 좋은데 이곳은 그렇지 않다.

사실 공작산 종주를 하고보니 공작산이 딱히 매력이 있지는 않다. 우리가 명산이라고 할 때 기준은 산 자체의 멋진 풍경과 탁트인 조망이다. 그런점에서 공작산은 두 기준과는 약간 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조망이 아주 나쁜 것은 아니다. 다른 명산과 비교해 조망이 다소 떨어진다는 것일 뿐 평균 정도는 된다. 다만 눈에 띄는 풍경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런 공작산을 유명하게 한 것은 수타사 계곡의 산소길이다. 하산길 능선 중 평탄한 길은 흙산이어서 편안하지만 오르고 내리는 길은 바위로 된 급한 비탈길이다. 이 비탈길의 고통을 위로해주는 것이 누구나 명승지로 인정하는 수타사 산소길이다. 수년 전 이곳을 다녀간 바 있다.

9월 28일이라면 초가을이다. 그런데도 수목들이 연초록이다. 올해 유달리 비가 많이 와서 그럴 것이다. 덕분에 나무는 5월 초처럼 싱그럽고 그것을 바라보는 내 눈은 시원하다.

50대 여성은 오를 때보다 급경사 내리막길에서 속도가 특히 더디다. 발이 아파서다. 무릎과 발목은 다 괜찮은데 이틀전 남산 둘레길을 무리하게 걸었던 여파로 발 자체가 욱신욱신거린단다. 결국 내리막 바위에서 미끄러져 바지가 온통 흙투성이가 되었다. 생각해보니 반대 방향인 수타사에서 올라오면 힘들 것 같다. 일반 등산객이 종주할 때는 공작현이나 문바위골에서 올라가 반대쪽 수타사로 내려갈 것을 권한다.

 

비탈길 오르고 내리기를 몇 차례 반복해야 해

정상에서 2㎞ 떨어진 수리봉에 올라가니 2시 25분이다. 지도상 거점으로 표시된 봉우리인데도 안내판이 없다. 누군가 매직펜으로 수리봉이라고 써놓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또한 수리봉은 수목들로 사방이 막혀있어 봉우리 느낌이 없다. 비단 수리봉만 그런게 아니라 등산길 대부분이 이렇다. 급경사 비탈길에서나 조망이 트였을 뿐 능선에서는 나무 숲에 가려 주변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속도가 느려 예상보다 산행 시간이 많이 길어지고 있다. 이렇게 오래 걸릴거라고 예상하지 못해 생수를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게 후회된다. 결국 생수가 떨어져 서너 시간은 갈증을 느끼며 걸어야 했다. 수리봉에서 약수봉까지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IBK 팀 마지막 사람도 우리를 추월했다. 결국 우리 부부만 남았다. 여성의 속도가 계속 느려진다. 발이 아픈데다 오래 걸어서다.

오름(왼쪽)과 내림. 수타사 쪽 하산길에는 급경사의 비탈길이 자주 나온다.

 

정상에서 3.5㎞ 정도 내려오자 약수봉 0.9㎞라는 안내판이 보이더니 급경사 비탈길이 다시 시작된다. 이번 내리막길은 다행히 흙산이지만 여성의 속도는 여전히 늦다. 하염없이 내려가는데 건너편에 높은 봉우리가 보인다. 저 봉이 우리가 올라가야 하는 약수봉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면서 급경사 내리막길을 500m 정도 내려가니 임도가 나온다. 정상에서 4.3㎞ 정도 떨어진 임도로 내려갔을 때 시간은 오후 4시 25분을 가리킨다. 산행 시작 후 어느덧 6시간 45분이 지나갔다.

임도 안내판을 보니 그토록 아니길 바랐던 봉우리가 약수봉이란다. 급경사길 400m를 다시 올라가야 한다. 여성이 힘들어해 종주를 포기하고 택시 회사에 전화를 걸었으나 내가 있는 임도 위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결국 택시와의 접선은 실패로 돌아갔다. 어떻게든 주요 지점인 약수봉으로 올라가야 한다. 여성의 얼굴에 낙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내가 길을 잘못 든 것을 안 아내 얼굴에 당혹감이 가득

여성이 천근만근 무거운 발을 이끌고 다시 400m 고지로 올라간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 들어보니 여성은 약수봉을 올라가는데 힘들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렀다고 한다. 땀이 말라 생긴 소금기 얼굴에 눈물이 흐르니 엄청 짰다며 웃는다.

겨우겨우 약수봉(558m)에 오르니 오후 5시 10분이다. 공작산 정상에서 어느덧 5시간이나 지났는데도 고도는 330m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계속 오르고 내려갔다는 얘기다. 여성은 약수봉에 설치된 벤치에 누워버렸다. 몸살이 날까 걱정이다. 이제 조금만 내려가면 멋진 풍경의 수타사 산소길이 기다릴 것이라고 희망적인 얘기를 해주며 달랬으나 귀에 들어오지 않는 표정이다.

약수봉으로 오르는 길. 아내는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한다. 오른쪽은 약수봉 정상석

 

약수봉에서 안내목을 보니 수타사 계곡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2개 있다. 수타사(용담)로 바로 내려가는 길이 2.8㎞, 그보다 조금 상류에 있는 귕소까지는 1.5㎞다. 그중 짧은 거리인 귕소까지 내려가 그곳에서 평탄한 수타사 산소길을 따라 내려가면 수타사와 주차장을 만나게 된다. 홍천 지역에서는 예로부터 아름드리 통나무를 파서 만든 소여물통을 ‘귕’이라고 하는데 계곡의 한 소(沼)가 ‘굉’처럼 생겼다고 해서 ‘굉소’라고 한다.

우리의 종주 계획대로라면 귕소로 내려가야한다. 그런데 그 순간 뭐가 씌웠는지 귕소로 내려간다며 수타사(용담) 쪽으로 방향을 잡는 실수를 했다. 발걸음은 수타사(용담)로 향하면서도 1.5㎞만 내려가면 귕소가 나온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가벼웠다. 능선길도 완경사에 흙길이어서 편했다.

수타사

 

1㎞ 정도 내려가다가 안내목을 만났는데 ‘수타사(용담) 1.1㎞’라고 표시되어 있다. 약수봉에서 1㎞ 이상 내려왔는데도 수타사로 가려면 아직 1.1㎞ 더 가야한다는 안내목을 보는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귕소에 거의 도착해야 할 시간에 아직도 능선에 있다는 것을 알고 처음에는 약수봉의 지도안내판이 잘못되었는 줄 알고 지도만 탓했다. 내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나중에 이 글을 쓰면서였다. 벌써 약수봉에서 1㎞ 이상 지나온 터여서 다시 약수봉으로 올라갈 수도 없다. 결국 직행하기로 했다. 여성의 얼굴에 당혹과 불만이 가득하다. 더 큰 문제는 그 때 시간이 5시 55분인데 30~40분 내에 해가 어둑어둑해진다는 것이었다.

지도상 약수봉에서 아래(수타계곡숲길)로 내려가야 하는데 왼쪽길로 잘못갔다. 지도상 ‘현위치(4번)’라는 곳에서 길을 잘못든 것을 알았다.

 

하산 후 “공작새도 싫고 영화 ‘공작’도 싫다”며 웃어

정상 속도라면 문제가 없는데 여성이 몹시 힘들어 하는 상태여서 속도가 느리다. 1시간 이상 더 걸릴 것이다. 어느덧 산행을 시작한지 8시간도 더 지나갔다. 혹시 몰라 준비해간 랜턴이 2개 있어서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솔직히 인적이 없는 곳이어서 살짝 겁이 나긴했다. 랜턴을 이용해 깜깜한 산속을 지나 수타사 옆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저녁 7시다. 9시간 20분이 걸린 것이다. 거리는 대충 11㎞였다. 아쉬운 것은 여성에게 한껏 홍보한 수타사 산소길과 수타사를 보여주지 못한 채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타사 산소길

 

택시를 불러 공작현 주차장으로 가는데 3만원을 달란다. 워낙에 칠흑같은 밤이어서 차가 어찌됐을까 걱정했는데 가보니 어둠 속에 다른 차가 4, 5대 주차하고 있어 의아했다. 알고보니 대형망원경으로 공작현 위 하늘에 총총한 별들을 촬영하는 동호회 사람들이었다. 그날이 화창해 촬영하기에 좋다고 생각한 듯하다.

귀가길 차 안에서 여성은 마음이 다소 편해진 듯 “공작이 들어간 것은 다 싫다”며 “공작새도 싫고 영화 ‘공작’도 싫다”고 웃는다. 그리고 “앞으로는 6시간 짜리 산행은 절대 따라가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 소득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100대 명산 중 한곳인 공작산을 종주했기 때문이다.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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