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동아일보 기자들 언론탄압에 항거하는 ‘자유언론실천선언’ 발표

1974년 들어 언론통제는 극에 달했다. 기관원들은 편집국에 상주했고 기사에는 간섭이 가해졌으며 기자들은 걸핏하면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갔다.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자괴감을 느끼던 그 시기, 동아일보 기자들이 언론자유 수호를 위한 저항의 첫 봉화를 지폈다. 1974년 10월 24일 오전9시15분. 동아일보 기자 180명이 상기된 표정으로 3층 편집국에 모여 있었다. 전날 송건호 편집국장을 비롯 간부사원 3명이 서울농대생들의 유신반대시위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고 온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기자가 자유언론실천선언문을 읽어내려갔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사회가 처한 미증유의 난국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언론의 자유로운 활동에 있음을 선언한다….” 동아일보 기자들이 불을 댕긴 자유언론실천운동은 다른 신문사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사장·편집국장 연행에 항의하며 이틀째 철야농성을 하고 있던 130명의 한국일보 기자들은 24일 저녁 7시30분 연행사실이 자사(自社) 신문에 보도될 때까지 제작을 거부하기로 결의하고 조선일보 기자들은 그날 오후 9시20분 긴급 기자총회를 열어 ‘언론자유회복을 위한 선언문’을 채택하고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전국 31개 신문·방송·통신사도 들고 일어서 기사에 대한 외부압력 배제와 사실보도를 다짐하는 선언문을 채택했다.

그러나 곧 박정권의 보복이 가해지면서 동아일보는 세계언론사상 유례가 없는 무더기 광고해약 사태를 맞았다. 12월 16일부터 광고주들이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하나둘씩 해약하던 광고계약은 12월 20일부터는 무더기 해약사태로 번졌다. 그러나 12월 30일자 1면 광고에 조선일보 회장을 역임한 홍종인 선생의 ‘언론자유와 기업의 자유’라는 글을 신호탄으로 각계각층에서 격려광고가 답지했다. 이듬해 7월 15일 동아일보와 중앙정보부가 타협책을 찾을 때까지 격려광고가 1만351건이나 쇄도하고 판매부수는 12만부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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