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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 가리산 ①] 맑은 날은 ‘강원 영서 제1의 조망터’ 자랑하지만 비 내린 날은 운무(雲霧)에 가려 희미한 정상(1봉)이 오히려 운치있고 멋져

↑ 3봉에서 촬영한 1봉(정상) 모습. 운치 있고 멋지다. 용준 촬영

 

by 김지지

 

☞ 내맘대로 평점(★5개 만점). 등산요소 ★★★ 관광요소 ★★★

☞ 7.2㎞에 3~4시간

☞ 주차장 → 합수곡 → 가삽고개 → 정상 → 무쇠말재 → 합수곡 → 원점회귀

 

멀리 평평한 능선에 우뚝 솟아 있는 암봉이 눈길 끌어

가리산의 주소는 강원도 홍천이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옆에 조성된 자연휴양림 도로를 따라 올라가는데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진다. 2019년 10월 5일 오전이다. 기상예보는 오전에 시간당 5㎜ 정도만 내리다가 오후에 그친다고 했다. 가볍게 생각하고 산 정상 쪽을 바라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멀리 평평한 능선에 우뚝 솟아 있는 2개 암봉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장소에 따라 2개봉 혹은 3개봉으로 보이는데 노적가리처럼 고깔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이름이 가리산이다. 소양댐에서 바라볼 때 우뚝 솟아있는 가리산의 두 암봉이 마치 알프스의 유명한 마터호른산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등산객도 있다.

가리산 전경 (출처 홍천군청)

 

오늘 등산의 들머리격인 홍천군 두촌면 천현리 일대에는 ‘가리산 자연휴양림’이 자리잡고 있다. 노송·기암괴석과 조화를 이루고 다목적광장·민속놀이장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어 사계절 가족휴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휴양림 관리사무소 앞에 등산 시간을 알려주는 2개의 팻말이 있다. 오른쪽 관리사무소 앞을 지나는 코스는 4시간 30분이고, 그냥 직진해서 합수곡으로 올라가는 코스는 3시간 30분으로 표시되어 있다. 3시간 30분 코스는 휴양림에서 1㎞ 정도 떨어진 합수곡(合水谷)을 지나 무쇠말재(왼쪽)나 가삽고개(오른쪽)를 거쳐 정상으로 올라가는 코스다. 무쇠말재 쪽이 시간은 덜 걸리지만 조금 가파른 편이고, 가삽고개 쪽은 완만한 대신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4시간 30분 코스는 관리사무소에서 2.5㎞를 올라가면 새득이봉이 나오는데 가삽고개로 이어진다. 3시간 30분이든 4시간 30분이든 순수 산행시간이 그렇다는 것이니 산중 식사를 겸할 때는 1시간 정도 추가하면 된다.

 

휴양림 → 합수곡 → 가삽고개 → 가리산 정상 → 무쇠말재 →합수곡 코스

합수곡에 다다랐을 때 빗방울이 굵어진다. 우비를 꺼내 입었는데도 비가 세차게 내려 잎이 무성한 나무 옆에 서서 서너 차례 비를 피했다. 불현듯 “가리산이 나를 거부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가리산 산행은 이틀 전(10월 3일) 고교 동기 전영일과 대학 후배 유용준과 함께 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우리 세 사람은 1년 전 충남 홍성의 오서산에서 백패킹을 함께 한 인연이 있다. 그래서 1년만에 재회하는 산행이었는데 10월 3일 태풍을 수반한 비가 내린다는 기상예보에 지레 겁먹고 포기했더니 막상 10월 3일에는 날씨가 화창해 속에서 불이 났었다.

2018년 9월 오서산 갔을 때 모습

 

일자를 10월 5일로 연기하자 영일이가 다른 약속이 있다고 해 할 수 없이 용준과 둘이서만 산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화창해야 마땅한 초가을에 비가 내리니 “가리산이 나를 거부하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 쉬운 산 아니야!” 하면서 “다음에 또 찾아오라”는 관심 표시로 받아들였다. 백패킹 중독자답게 용준의 배낭이 오늘도 묵직하다. 백패킹 때 가져가는 물건들을 습관적으로 그대로 가져가기 때문인데 주말등산객인 내 눈에는 자기 학대처럼 보인다.

오늘 코스는 합수곡에서 오른쪽 고갯마루인 가삽고개(910m)로 올라가 능선길을 거쳐 가리산(1051m) 정상의 3개 봉에 올라갔다가 반대쪽인 무쇠말재(860m)를 거쳐 다시 합수곡으로 내려오는 원점회귀 코스다. 결국 계곡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으로 올라가 왼쪽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가리산 일대 지도

 

물론 왼쪽 고갯마루인 무쇠말재로 올라가 가삽고개로 내려오는 등산객도 많다. 다만 정상을 경험하고 보니 무쇠말재 코스가 상대적으로 경사가 약간 더 있어보이고 오른쪽 가삽고개가 수월해 보인다. 하산 후 경사도가 찍힌 위성지도를 보니 좌우 양측 경사도가 데칼코마니처럼 비슷하다.

합수곡 갈림길. 오른쪽 길이 가삽고개 방향이고 왼쪽 길이 무쇠말재 방향이다.

 

길은 호젓하고 물을 머금은 나무들에서는 생기 돌아

가삽고개는 비교적 너른 평지다. 여유롭게 주위를 살피는데 나무들이 그렇게 싱그러울 수 없다. 나무들마다 20대 젊은이들처럼 때깔이 좋다. 10월 5일이면 단풍을 준비해야 할 철인데 어쩌다 5월 초의 봄날처럼 나무마다 연초록의 향연을 벌이는 것일까. 올해 유난히 비가 많이 와서다. 7월까지는 가뭄이었는데 8월부터 자주 비가 내린다. 태풍의 영향이 크다.

가삽고개

 

규모가 작긴 하지만 10월 5일 현재 7개의 태풍이 한반도에 영향을 미쳤다. 기상청에 따르면 1981년부터 2010년까지 30년 간 한반도에 영향을 준 것은 평균 3.1개다. 그런데 올해는 벌써 7개다. 1959년 이후 60년만의 기록이란다. 앞으로 태풍이 1개 더 다가오면 역대 최다 태풍 기록을 갈아치우게 된다. 백성들에게는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적지 않겠지만 나무들로서는 비를 동반한 태풍 덕에 올해가 풍년인 셈이다.

인생 선배들의 경험에 따르면 비가 많은 해는 단풍이 좋지 않다고 한다. 싱그러운 모습을 유지하다가 갑자기 추워져 그렇단다. 그래도 자연의 변화는 어쩔 수 없는가보다. 단풍색을 살짝 내비치며 초가을 정취를 자아내고 있다. 1년 만에 단풍을 만나니 가슴이 설레인다. “11월 중순까지 산에 미치리라” 다짐해본다.

가삽고개를 지난 능선길에 운무가 가득하다. 길은 호젓하고 물을 머금은 나무들에서는 생기가 돈다. 운무 때문에 능선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지만 날씨가 좋아도 안보이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나무들이 무성하고 높게 자랐기 때문이다. 요즘은 전국 어느 산에 가도 가리산처럼 주변 풍광을 볼 수 없는 곳이 많다. 생각해보니 흙산이어서 그런 것 같다. 가리산은 능선은 물론 오르막도 흙길이다. 바위산이라면 나무가 자라지 못해 주변 풍광이 잘 보일 것이다.

편안한 능선길을 걷다 보면 정상으로 올라가기 전 오른쪽으로 소양호의 물노리 선착장으로 내려서는 길이 나온다. 물노리선착장까지는 2시간이면 족하다. 다만 배편이 많지 않으니 시간을 미리 확인하고 내려가야 한다.

가삽고개 지나 능선길

 

운무 때문에 사방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다음에 또오라”는 가리산의 뜻

능선은 완만하지만 정상은 좁은 협곡을 사이에 둔 3개의 암봉으로 이뤄져 있다. 정상 부근에 다다르니 바위산이 앞을 가로막는다. 급경사여서 쇠파이프(쇠난간), ㄷ자형 쇠굽, 철제 받침대가 등·하산을 도와주고 있다. 다만 오늘은 쇠파이프가 비를 맞아 미끄럽다. 조심 또 조심하지 않으면 다치기 십상이다.

정상에 올라가니 1봉, 2봉, 3봉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중 1봉이 정상이다. 우리는 2봉, 3봉, 1봉 순으로 올라갔다. 대개는 먼저 3봉으로 올라가 2봉, 1봉 순이다. 2봉의 20m 앞에 큰바위얼굴이 있다. 바위 아래는 수십 길 절벽이다. 2봉에서 1봉으로 가려면 왼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급사면을 올라가야 한다.

정상석(1봉)과 큰바위얼굴(2봉)

 

보통은 정상인 1봉에 올라서면 사방이 훤히 트이고 발 아래로 소양호의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 향로봉~오대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고산 준령의 웅장한 풍모를 쉽게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내게는 모두가 “꿈깨셔!”다. 구름 속이라 산 아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좋게 생각했다. “다음에 또오라”는 가리산의 뜻이라고. 다행히 운무 사이로 희미하게 드러나는 수목들의 실루엣이 신비롭다. 덕분에 3봉에서 1봉을 찍은 용준의 사진이 멋지고 운치가 있다.

1봉 정상에서 급경사를 내려오니 멀지 않은 곳에 샘물(석간수)이 있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샘물(석간수)은 대형바위 벽면 사이에서 사계절 끊이지 않고 흘러내린다. 암반에서 물이 나오는 곳은 흔치 않다. 석간수(石間水)는 400리 홍천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정확히 말하면 야시대천의 발원지다. 야시대천은 굽이굽이 약 18㎞를 흘러 44번국도가 지나는 성산리에 이르러 홍천강과 합수되고 다시 흘러내려가 북한강의 지류인 소양강의 수원을 이룬다.

쫄쫄 흐르는 석간수를 마시니 괜히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다. 석간수 옆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용준이 가져온 전투식량(비빔밥)을 처음 먹어봤는데 비 때문에 기온이 내려간 숲속에서 컵라면 국물과 먹으니 환상적 조합이다. 다만 땀과 비로 속옷이 젖은 상태에서 잠시 쉬고 있으니 바로 고뿔이 스멀스멀 내 몸속으로 들어와 콧물을 뿌린다.

샘물(석간수)

 

총평 하자면 가리산은 일반 등산객에게는 이상적인 산

하산길 역시 가삽고갯길처럼 흙산이어서 편하긴 하나 경사는 약간 더 심하다. 정상에서 0.8㎞를 내려가면 무쇠말재다. 무쇠말재는 홍수가 났을 때 무쇠로 배터를 만들어 배를 묶어 두었다고 해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하산길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오후 2시 55분이다. 9시 35분 출발했으니 5시간 20분 걸린 셈이다. 입구 팻말에 3시간 30분으로 표시된 것과 비교하면 점심시간을 포함해도 1시간 정도 더 걸린 셈이다. 생각보다 많은 비가 내려 속도가 더디고 비를 피하려고 나무 아래에 있는 시간이 길어서일 것이다. 표고차는 주차장이 360m이고 정상이 1051m이니 690m 정도 올라간 셈이다. 총거리기 10㎞ 남짓으로 표시되는데 생각보다 길다. 쉬엄쉬엄 걸어서 그런지 피로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총평을 하자면 가리산은 일반 등산객에게는 이상적인 산이다. 고갯마루로 올라가는 길의 경사도 심하지 않고 정상 아래까지는 평탄한 흙산이라 편하다. 맑은날에는 정상에서 바라보는 주변의 풍광까지 좋으니 금상첨화다. 주차장에서 가리산 정상을 올려다보며 “당신을 다시 보기 위해 한 번 오겠다”고 약속하고는 작별인사를 한 뒤 서울로 발길을 돌렸다.

4개월 전 가리산에 갔던 친구 영민이가 그린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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