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美 시카고 대화재

1833년 겨우 150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1870년 무렵에는 30만 명으로 급증할 만큼 시카고는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던 어느날 40년 동안 일궈온 모든 것들을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1871년 10월 8일 일요일 저녁 9시 발생한 불이 다음날 10시 30분까지 계속되면서 도시를 삼켜버린 것이다.

그것은 화재가 아니라 재앙이었고 저주였다. 10㎞에 달하는 시가지 전역이 잿더미로 변했다. 8만 여채의 건물이 불에 타고 10만 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에 비하면 사망자 300명은 차라리 기적에 가까웠다. 당시 언론들은 올리버리라는 주인이 젖을 짜주지 않아 신경질을 낸 암소 한 마리가 등불을 엎는 바람에 불이 났다고도 하고 정부의 구호물자가 끊겨 올리버리 부인이 화를 내 불을 냈다고 보도했지만 정확한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불에 타기 쉬운 소나무로 보도(步道)를 깔았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일부에서는 고대 바빌론이나 로마의 재앙에 비유하며 ‘현대판 묵시록’으로 비난했다.

그러나 시카고는 다시 일어섰다. 결과적으로 고대 로마가 불에 탄 뒤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한 것처럼 시카고에도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 1개월 만에 5000 채의 주택이 세워졌고, 새로운 건축 기술의 경연장이 되고 미국 건축의 살아있는 박물관이 되었다. 마천루를 짓는데 필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인 철골 구조 건축이 화재 후 10여 년만에 시카고에서 창조되었다. ‘마천루 시대’가 개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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