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강우규 의사, 日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 투척

1919년 9월 2일 오후5시쯤. 신임 총독으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가 남대문역(현 서울역)에 내려 마차로 갈아타는 순간, 갑자기 요란한 폭발음이 들렸다. 군중 속에서 날아온 폭탄 1개가 마차 주변에서 폭발한 것이다. 사이토는 화를 면했지만 주위에 있던 일본인 37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이 가운데 일본 경찰과 일본인 기자 2명은 이때 상처로 목숨을 잃었다.

사건직후 경찰들이 남대문역을 에워싸고 범인 색출에 나섰지만 범인은 이미 유유히 사라지고 없었다. 범인이 설마 환갑이 지난 노인이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범인은 64세 노인 강우규 의사였다. 강우규는 한일합병으로 나라가 망하자 “눈에 들어오는 것 모두가 보고싶지않은 것 뿐”이라며 이듬해 북간도로 이주해 길림성에서 신흥촌을 건설하고 동광학교를 세우며 교육사업에 진력하던 중,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영국제 폭탄 1개를 구입해 1919년 8월 5일 서울로 잠입했다.

마침 사이토의 부임 소식을 들은 강 의사는 폭탄을 허리춤에 차고 그 위에 저고리와 두루마기를 입었다. 시골영감 티를 내기위해 파나마 모자에 가죽신을 신고 남대문역앞 군중 속을 파고들었다. 거사 직후 현장을 빠져나와 이집저집 숨어다니던 중 9월 17일 친일경찰 김태석에게 체포돼 이듬해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마지막 유언을 묻자 대답대신 ‘사세시(辭世詩)’ 한편을 남겼다. “사형대 위에도(斷頭臺上) 봄바람은 도는데(猶在春風) 몸은 있으되 나라가 없으니(有身無國) 어찌 감회가 없으리요(豈無感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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