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KAL 007기 사할린 상공에서 격추

“KAL기는 조종사 과실로 항로를 이탈해 소련 영공을 침범함으로써 원인을 제공했고, 소련 전투기는 확인절차를 소홀히 한 채 성급히 격추했다.” KAL기 사고 후 10년이 지난 1993년 6월 14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사고원인을 이렇게 결론지었지만 사실을 확인해줄 사자들은 말이 없다.

미국 뉴욕을 떠나 앵커리지를 경유한 KAL 007편 보잉 747 점보여객기가 캄차카 반도 상공에서 소련 방공 레이다망에 잡힌 것은 1983년 9월 1일 새벽 0시15분(이하 한국시간)이었다. 당시는 미 정찰기가 수도 없이 출몰하던 때였고 이 때문에 소련 군부의 신경이 늘 날카로워 있었다. 이날 007기가 캄차카 반도 상공으로 들어설 때도 미 공군의 RC-135 정찰기가 007기와 평행으로 날다가 귀환한 뒤였다. 지상에서 소련 전투기 수호이 15기가 날아올랐다. “목표물이 점멸등을 깜빡거리고 있다.” 분명 전투기 조종사는 이렇게 보고했으나 지상 관제소는 경고발사를 지시했다. 전투기 조종사는 “KAL기를 향해 조명탄을 발사했으나 응답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죽은 자는 여전히 말이 없다. 비극은 계속된다.

007기가 고도를 높이자 전투기 조종사는 007기가 도망하는 것으로 간주해 관제소에 보고했고 관제소는 다시 격추 명령을 내렸다. 전투기가 발사한 두 발의 미사일이 날개 쪽 엔진과 꼬리 부분에 명중했다. 새벽 3시25분30초였다. “목표물은 파괴됐다.” 조종사의 보고와 거의 동시에 007기 내 경보장치가 “삐… 삐… ”거리며 시끄럽게 울어댔다. 곧 곳곳에서 절규가 터져나왔다. 한국어, 영어, 일어로 된 기내방송이 계속해서 숨가쁘게 터져나왔다. 3시 27분 8초, “도쿄(관제탑) 나오라”는 007기 기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도쿄 관제탑에 전달됐고 잠시 후 도쿄 관제소가 007기를 호출했으나 더 이상의 응답이 없었다. 그 시각, 007기는 29명의 승무원을 포함 269명의 승객을 태운 채 차디찬 사할린 바다 속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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