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경주 천마총에서 천마도 발굴

천마총 입구

 

원래는 경주의 황남동 98호 고분 ‘황남대총’을 발굴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높이가 25m이고 하부 길이가 120m나 되는, 경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고분을 발굴하기에는 발굴단의 경험이 아직 부족했다. 예비지식도 얻고 경험도 축적할 겸 그 옆 155호 고분을 시험용으로 삼았다. 1973년 4월 6일 봉토제거작업을 시작한 발굴단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고분이 아직 어느 누구의 손에도 도굴의 화를 입지 않은 그야말로 처녀분이었기 때문이다.

7월11일 낮1시30분부터 고분의 적석층(積石層)을 모두 파헤치고 유물층을 파헤쳐 들어가자 유물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귀고리 두 쌍과 긴 칼, 그리고 토기 5점이 첫 날 출토된 유물들이었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도 가물고 더워 발굴팀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다행이었지만 “왕릉을 파헤쳐 큰 가뭄이 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다. 일부 주민은 현장으로 몰려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곳에서 대박이 터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7월 13일, 1500년간의 긴 잠에서 깬 순금제 신라금관이 출토됐다. 신라금관으로 7번째, 광복 후로는 최초였다. 하늘이 노했을까. 금관의 자태가 드러나는 순간 그 쨍쨍하던 하늘이 갑자기 암흑천지로 변하면서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다. 8월23일, 발굴단의 눈을 의심케 하는 유물 한 점이 또 출토됐다. ‘천마도(天馬圖)’였다. 말 탄 사람에게 흙이 튀지 않도록 안장에 늘어뜨린 장니(障泥)에 그린 그림이었다. 무덤의 주인을 밝힐 만한 자료가 발견되지 않아 1974년 9월에 고분 이름을 ‘천마총’이라 지었다. 그러자 경주 김씨 측에서 들고 일어났다. 김씨 성을 가진 임금의 무덤이 분명한데, 하필이면 왜 말 무덤이냐는 게 그들의 항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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