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45분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유엔군측 제3초소 앞에서 한국인 노무자 5명이 미루나무 가지를 치고 있었다. 현장에는 미군 장교 2명과 사병 4명, 한국군 장교 1명과 사병 4명 등 모두 11명의 유엔군 장병들이 이들을 호위하고 있었다. 이때 2명의 북한군 장교와 10여 명의 북한군이 다가와 “나뭇가지를 치지말라”며 생트집을 잡았지만 여름만 되면 무성한 잎이 관측소 시야를 가로막아온 터라 미군 장교는 이를 무시하고 작업을 강행했다.

그러자 곧 트럭을 타고 온 20여 명의 북한군이 “죽여라”는 북한 장교의 고함과 함께 곡괭이와 도끼 등을 유엔군에게 사정없이 휘둘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유엔군은 대항할 틈조차 없었다. 미군 장교 2명을 살해하고 나머지 9명에게도 중경상을 입힌 북한군은 유엔군 초소까지 부수고는 황급히 북쪽으로 도주했다. 참사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은 즉각 2개 전투비행단을 한국에 급파하고 항공모함 미드웨이호와 5척의 구축함을 한국해역에 출동시켜 무력시위에 들어갔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의 이같은 행동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푸에블로호 사건(1968년 1월)과 EC-121기 피격사건(1969년 4월) 때 원산과 청진 폭격을 주장했으나 미국은 무력시위만 했을 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상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친 개한테는 몽둥이가 필요하다”는 게 박 대통령의 지론이었다. 결국 위기감을 느낀 김일성이 유감의 뜻을 담은 각서를 유엔군 측 대표에게 전달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았던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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