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레흐 바웬사, 폴란드의 레닌조선소 파업위원장에 선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성경구절(욥기 8장7절)에 쓰여진 것처럼 발트해 연안 항구도시 그단스크의 레닌조선소 노동자들도 처음에는 힘이 미약했다. 재정파탄에 직면한 폴란드 정부가 1980년 7월 1일 고기값을 한꺼번에 30∼60%이나 올린 것이 불씨였다.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항의했다. 바르샤바 자동차공장에서 처음 불을 지핀 파업이 곧 폴란드 전역으로 확산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초반에 보였던 노도와도 같은 분위기가 점차 사그라들 조짐을 보였다. 노동조건 악화와 식료·연료의 만성적 부족에서 비롯된 파업이었던 탓에 파업을 끌고갈 정치적 프로그램이 부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중 8월 14일, 한 사내가 1만6000명의 노조원이 파업 중인 레닌조선소 담을 넘었다. 10년전 이 공장에서 해고된 전기공 레흐 바웬사였다. 그 자리에서 파업위원장에 선출된 바웬사는 여세를 몰아 그단스크·소포트·그디니아 3개 지역을 총괄하는 연합 파업위원장에 올랐다. 바웬사가 16개 항을 요구하며 정부를 몰아붙이자 궁지에 몰린 정부는 8월 31일 자유노조 설립과 검열 완화, 파업권 승인 등을 양보했다.

파업은 2개월 만에 성공리에 끝이 났지만 수원지에서 발원한 ‘자유’와 ‘민주화’ 요구는 이미 강물로 내쳐 달릴 시내를 이루고 있었다. 9월에 자유노조 ‘연대(連帶·Solidarity)’가 결성됐고 바웬사는 ‘연대’를 이끌었다. 베를린 장벽과 철의 장막을 무너져 내리게 한 균열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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