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언론윤리위원회법 파동

1964년 제정된 ‘언론윤리위원회법’은 겉으로는 언론의 자율규제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관제(官製) 윤리위원회를 발족시켜 언론자유를 침해하려 한 위헌적이고 비민주적인 악법이었다. 그런데도 여당이 장악하고 있는 국회는 일요일이던 1964년 8월 2일 밤10시15분 법안을 통과시키고 정부는 사흘 후 공포했다.

그러자 분노한 모든 언론인들이 들고 일어섰다. 철폐투쟁위를 결성하고 전국언론인대회를 열었다. 언론자유수호를 목적으로 한국기자협회가 출범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언론인들이 좀처럼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정부는 언론사 발행인에게 직접 압력을 가해 다수 언론사를 투쟁대열에서 이탈시켰다. 8월 28일은 각 언론사 대표가 한국신문발행인협회에 나가 언론윤리위 소집에 대한 찬반 입장을 밝히는 날이었다. 정부의 압력이 얼마나 집요했던지 조선일보·동아일보·대구매일 등 5개사만 반대하고 나머지 21개사는 그새 찬성으로 돌아섰다.

정부는 이들 5개 언론사에 보복적인 탄압을 가했다. 정부기관은 5개사 신문을 구독하지 못하도록 하고 은행은 융자회수를 무기로 압력을 행사했으며 제지사는 신문용지 가격을 차별적으로 적용했다. 심지어 취재기자의 야간통행증까지 회수해갔다. 그러나 5개사에 격려전화가 쇄도하고 함석헌·장준하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까지 정부를 비판하기 시작하자 결국 박정희 대통령은 9월 4일 언론보복조치를 철회했다. 닷새 후에는 법 시행을 전면 보류하고 윤리위 소집을 무기 연기하는 조치를 취해 근 3개월간에 걸친 언론윤리위법 파동도 마침표를 찍었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