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415명 판사 가운데 153명이 사표 제출한 사법부 파동

1971년 7월 28일, 사법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서울형사지법 판사 37명이 무더기로 사표를 낸 것이다. 서울지검이 이날 0시40분쯤 서울형사지법 이범렬 부장판사와 최공웅 판사, 이남영 서기 등 3명에게 뇌물수수혐의를 적용,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이 발단이었다. 국가보안법 사건을 심리하는 두 판사가 제주도 출장 시 사건담당 변호사로부터 일체의 비용을 제공받았다는 것이 검찰 측 주장이지만 시국사건에 무죄판결을 잇따라 내린 이범렬 판사를 겨냥한 꼬투리 잡기라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의 사법부 길들이기였던 것이다.

영장은 기각됐지만 분개한 판사들이 들고 일어섰다. 서울민사지법 판사 40명이 30일에 사표를 제출한 것을 필두로 전국 415명의 판사 가운데 153명이 사표를 제출했다. 동정사표라기보다 외부 압력에 시달려온 그동안의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사태가 좀처럼 가라않지 않자 박정희 대통령은 신직수 법무장관을 불러 사건을 확대하지 말도록 지시했다.

신 장관이 8월 1일 민복기 대법원장 집을 찾아가 수사 백지화 등 수습방안을 제시하면서 수그러들던 파동이 다시 재연될 조짐을 보인 것은 판사들이 검찰 관계자의 자진 인책을 요구하면서였다. 결국 8월 27일 판사들이 사표제출을 철회함으로써 파동은 일단락됐지만 두 판사는 판사직을 그만두었다. 무덥고 긴 여름 한달 동안 사법권 수호를 위한 판사들의 몸부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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