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나세르, 수에즈운하 국유화 선언

1956년 7월 26일 밤, 중동 지역을 20세기 후반 세계질서의 주요변수로 떠오르게 한 폭탄선언이 발표되었다.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의 ‘수에즈운하 국유화’ 선언이었다. 나세르는 이날 10만 명의 군중이 운집한 혁명 4주년 기념연설에서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의 희생으로 구축된 것임에도 이제까지 외국의 부당한 지배로 착취를 받아왔다.… 운하를 국유화하면 그 수입으로 애스완댐을 건설할 수 있다”며 수에즈운하 국유화를 선언했다.

나세르가 사실상 프랑스·영국이 소유해오고, 아직 조차 기간이 12년이나 남아있는 수에즈운하 관리회사를 국유화하겠다고 나선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세르가 집단안보체제인 ‘바그다드 조약기구’ 가입을 거부하고 소련의 지원을 받는 체코로부터 무기를 구입하는 등 반(反) 서방정책을 취해나가자 미국과 영국이 신애스완댐 건설을 재정지원하기로 한 당초의 약속을 뒤집고 지원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나세르는 화물선 밑창에 구멍을 뚫어 운하입구에 침몰시킴으로써 운하를 간단히 봉쇄했다. 그러나 운하 봉쇄는 석달 뒤 이스라엘과 영국·프랑스 연합군의 이집트 침공을 불렀다. 10월 29일 밤, 3만 명의 이스라엘군이 이집트 영내 시나이반도를 침공한 이른바 제2차 중동전이 발발한 것이다. 이집트는 전쟁에서 참패했다. 그러나 이 사태와 함께 100년 간에 걸친 영국·프랑스의 중동지역 지배 시대도 마침표를 찍었다. 이후 중동 지역은 미·소 냉전체제 속으로 급속히 빨려 들어갔고, 나세르는 ‘서방세계에 도전한 첫 아랍인’으로 단숨에 아랍 세계의 영웅으로 급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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