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파리 지하철 개통

20세기의 문턱에는 파리가 있었다. 20세기는 파리를 통해서 문을 열었고 파리는 20세기 초입의 꽃을 피웠다. 1900년 그 해에 파리는 만국박람회를 열고 올림픽을 치렀으며 지하철시대를 개막했다. 스페인 출신의 피카소가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첫 개인전을 연 것도, 훗날 오르세미술관으로 탈바꿈할 오르세역이 건축된 것도 1900년이었다. 오늘날 세계최대의 인문학 잔치인 세계철학자대회도 그해에 파리에서 처음 열렸다.

1900년 7월 10일 파리 지하철이 개통 테이프를 끊었다. 파리박람회 개막에 맞춰 1898년 3월에 시작된 공사가 2년 4개월만에 결실을 본 것이다. 공사는 지상의 교통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지하에 굴을 파고 상부를 보강하는 공법으로 진행됐다. 3량으로 된 전차가 기점에서 종점까지 16개의 지하철역을 지나는데 33분이 소요됐다. 지하철을 처음 타본 사람들은 20세기가 몰고올 대변화의 한 자락을 경험하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들의 놀라움은 ‘땅속으로 가는 기차’에만 머물지 않았다. 지하철 입구와 승강장 등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전혀 새로운 건축양식, 전혀 새로운 디자인’에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말로 ‘새 예술’을 뜻하는 ‘아르누보(Art Nouveau)’였다.

사람들은 아침 저녁으로 아름다운 곡선과 색채, 회화적 디자인을 지하철 입구에서 마주하고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전통적 예술과 예술 지상주의를 거부하고 자연형태에서 모티프를 빌려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고 생동적인 아름다움을 제공한 아르누보의 출현은 중산층의 번영과 자유로운 행복, 쾌락의 추구, 세기말적 불안, 여성해방 등의 요소들을 반영했다. 그러나 아르누보는 덩굴이나 담쟁이 등의 식물을 연상시키는 유연하고 유동적인 선(線)과, 파상·곡선 등 특이한 장식성을 자랑했지만 합리성을 소홀히 하고 기능을 무시한 형식주의적이고 탐미적인 장식에 빠지는 바람에 10여년 간의 전성기만을 보내다 단명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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