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구석구석

영월 ‘동강 래프팅’의 모든 것… 잣봉에서 흘린 땀을 동강 래프팅과 장대소낙비가 씻겨주네

↑ 래프팅을 하다가 잠시 중간에 내려 단체사진을 찍었다.

 

by 김지지

 

오늘의 일정. 강원도 영월의 잣봉 등산과 동강의 래프팅이다. 동행자는 고교 동기들로 구성된 금동산악회 친구 18명과 일부 친구의 아내 4명 등 모두 22명이다. 1박 2일 동안 먹고 마시고 노래할 영월의 숙소(털보네농어촌민박)에 도착한 것은 2019년 6월 15일 오전 10시였다. 숙소 앞으로는 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뒤로는 야트막한 동산이 숙소를 품고 있다.

하룻동안 2개 일정을 소화해야 하기에 짐도 풀지 않은 채 바로 잣봉으로 향했다. 잣봉(537m)은 동강을 사이에 두고 숙소 건너편에 있다. 일반적으로 잣봉 등산의 출발지는 영월읍 거운리의 봉래초등학교 거운분교 앞이다. 그곳에 차를 주차하고 복장과 장비를 챙긴 후 부근의 동강관리사업소 삼옥안내소를 지나 잣봉에 오른다. 길이 널찍하고 안내 팻말이 잘 세워져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거운분교는 숙소에서 200~300m 떨어진 거운교를 지나 왼쪽에 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잣봉이기에 거운교 건너편 오른쪽의 삼옥안내소로 바로 향했다. 날씨는 더웠으나 걸음은 씩씩했다. 안내소 앞을 지나는데 “설명을 들어야 한다”며 숲해설사가 붙잡는다. 잣봉과 동강의 어라연 등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안내소에서 잣봉까지는 2.8㎞. 산모퉁이 삼거리까지 0.6㎞ → 작은마차 마을까지 0.8㎞ → 급경사 전 쉼터까지 0.3㎞ → 만지고개를 지나 정상까지 1.1㎞다. 산모퉁이 삼거리에서 왼쪽이 잣봉, 오른쪽이 ‘동강 비경의 백미’로 불리는 어라연이다. 어라연쪽 길은 동강변을 따라 걷는 트레킹 코스다. 잣봉쪽 길보다 1.4㎞ 더 길다. 어라연에서도 1.0㎞의 급경사 길을 오르면 잣봉과 연결된다.

잣봉을 향해 오르는 친구들

 

삼거리에서 왼쪽 길을 택해 20분쯤 걸어 언덕에 오르니 아담한 분지에 자리 잡은 작은마차 마을이 나타난다. 그때까지의 길은 시멘트길이어서 산행맛은 별로다. 마을이 산속에 있긴 하나 주변의 자연과는 부조화다. 언덕길을 다 내려가 젓소 사육장과 빨간 벽돌집 근처에서 마차 마을로 들어가지 않고 오른쪽 길을 택하면 그때부터가 사실상 등산길이다.

요즘 등산에 탄력이 붙은 종서가 빠른 걸음으로 선두대장인 나를 앞질러간다. 선두대장이면서도 중간중간에 자주 사진을 찍어 선두를 놓치는 일이 잦자 선두에 충실하라는 지적을 받았는데도 자꾸 카메라에 손이 간다. 마차마을로 직진해도 잣봉과 연결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길이 시멘트 길이고 동강의 비경을 볼 수 없어 비추다.

 

잣봉 가는 능선, 숲은 울창하고 길은 푹신해

안내판이 가리키는 대로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잣봉 1.1km’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작은 계곡과 목조다리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10여분 간 가파른 나무계단길과 급경사길을 오르면 평탄한 능선에 ‘어라연·잣봉’이라고 쓰인 안내판을 만난다. 잣봉 주능선의 만지고개다. 과거 마차마을 사람들이 동강변의 만지로 넘나들던 길이라고 해서 만지고개다.

만지고개에서부터 잣봉까지는 울창한 소나무와 낙엽송이 숲을 이룬다. 그 사이로 완만하고 푹신한 숲길이 펼쳐진다. 곧 오른쪽 나뭇가지 사이로 까마득히 동강 물줄기가 눈에 잡히고 뒤이어 2개의 작은 전망대와 전망터가 나타난다. 첫 전망대에는 나무 데크가 있어 동강을 조망하는 데는 편리하지만 어라연의 일부 물길만 보여 살짝 아쉽다. 그래도 동강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는 데는 이만한 곳이 없다.

어라연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전망대에서 10여분간 올라가니 전망이 더 좋은 두번째 전망터다. 크게 굽이쳐 내려오는 동강의 물줄기와 삼선암 등 어라연 일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협곡에 자리잡은 기암괴석과 울창한 송림이 어우러져 그 자체로 한 폭의 동양화다.

제2전망터에서 내려다본 동강의 어라연 전경

 

전망터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잣봉 정상이다. 전망은 지나온 두 개의 전망대보다 못하지만 그래도 평평한 솔숲은 수십명이 쉬어가기에 적당하다. 잣나무가 많아서 잣봉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으나 알고보니 봉우리 모양이 잣을 닮았다고 해서 잣봉이란다.

생각해보니 어라연을 볼 수 없다면 등산객들이 잣봉을 찾지 않을 것 같다. 산 자체의 매력이 그다지 없어서다. 결국 등산의 즐거움을 위해 잣봉에 오른다기 보다는 어라연을 감상하기 위해 오르는 것이니 잣봉의 존재 가치는 ‘어라연의 포토존’이다. 물론 인근 장성산(백둔봉)으로 올라가는 능선으로서의 역할은 살아있다.

 

어라연(魚羅淵)은 “한국 최고의 비경” “동강 비경의 백미”

어라연(魚羅淵)이 어떤 곳이기에 “한국 최고의 비경” “동강 비경의 백미‘라는 찬사가 쏟아지는 것일까. 어라연은 자연경관이 빼어난 특정 지역의 협곡, 수직절벽, 삼선암(상·중·하선암), 소, 여울 등의 총칭이다. 푸른 물 속에서 솟아 오른 기암괴석과 바위 틈새로 솟아 난 소나무가 주변의 계곡과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강물 속에 뛰노는 물고기들의 비늘이 비단같이 빛난다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잣봉 맞은 편에서 내려다본 어라연 전경 (출처 영월군청)

 

잣봉에는 어라연으로 내려가는 길(1㎞)과 장성산(694m)으로 올라가는 길(1.6㎞)도 있다. 어라연 길은 가파른 숲길을 따라 20분 정도 내려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곧장 100m를 가면 어라연의 모습이 잘 보이는 제3전망대이고 오른쪽으로 100m 가면 어라연으로 내려간다.

어라연 강변으로 내려서면 동강줄기다. 자갈로 덮인 이 길은 된꼬까리여울을 지나 과거 동강댐 예정지로 거론되었다가 취소된 만지(滿池)로 이어진다. 만지는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가득하다는 뜻으로 과거 목재를 운반하던 떼꾼들이 잠시 쉬어가던 곳이다. 만지를 지나 계속 강변을 따라가면 잣봉 길과 어라연 길로 나뉘는 초입의 산모퉁이 삼거리가 나온다. 잣봉에서 장성산으로 가는 1.6㎞ 길은 비교적 부드러운 숲길이다. 하지만 정상에서 문산리 산촌생태마을로 이어지는 2.2㎞ 구간은 가파르고 절벽구간이 많아 녹록지 않다. 능선 중간쯤에는 동강의 새로운 명물인 쌍쥐바위 전망대가 있다.

점심을 마치고 12시 40분 하산을 시작했다. 오늘도 선근이를 비롯해 몇몇 친구가 쓰레기를 모아 배낭에 달고 내려간다. 산에 갈 때마다 느낀 게 있다. 20~30명이 산에서 식사를 하면 늘 쓰레기 처리가 문제다. 그때마다 솔선해서 쓰레기를 처리하는 주요 친구가 석범, 종근, 선근이다. 물론 다른 친구들도 있지만 주로 위 세 친구가 자발적으로 나선다. 그래서 우리의 살림을 맡고 있는 상호에게 매달 쓰레기 담당을 2명씩 순번으로 정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상호는 생각이 다른지 반응이 없다.

잣봉으로 오르다가 찰칵. 오른쪽은 잣봉 정상석이다.

 

하산 때는 상호 부부가 손만 잡지 않았을 뿐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며 저멀리 앞서 다정하게 걷는다. 뒷모습이 그렇게 정겨울 수 없다. 올라갈 때 잣봉으로 알았던 곳이 내려올 때 보니 장성산이고 그 옆 낮은 곳이 잣봉이라는 것을 알았다. 안내판에는 등산 총시간이 3시간 30분으로 나오지만 우리는 인원이 많아 4시간이 걸렸다.

친구와 아내

 

동강은 뱀이 기어가는 듯 강물이 굽이굽이 펼쳐진 사행천(蛇行川)

래프팅 시간에 맞춰야 하기에 하산 후 숙소로 바로 이동해 래프팅 업체 직원을 기다렸다. 래프팅의 출발지는 문산나루터다. 래프팅 업체 직원이 우리를 문산나루터까지 버스로 데려다주면 그곳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어라연을 거쳐 우리 숙소 앞에 있는 섭새강변에 도착하는 게 오늘의 코스다.

그런데 우리를 상류 출발지로 데려다줄 래프팅 업체 버스는 오지 않고 직원이 찾아와 “오전 11시 문산나루터에서 출발한 보트가 강물의 유속이 느려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며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한다. 그렇게 기다린 시간이 1시간이나 되니 슬슬 짜증이 난다. 그 사이 잣봉을 오르내리며 흘린 땀이 식고 래프팅에 대한 의욕이 꺾인다. 오후 강우 예보 때문에 금방 어두워질 것 같아 더욱 걱정이다.

우리를 출발지로 데려다 줄 소형버스가 숙소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 40분 쯤이었다. 버스 기사는 우리가 클레임을 걸까봐 가속 페달을 밟았다. 문산나루터에 도착하고 보니 래프팅을 하려는 팀이 몇 팀밖에 되지 않는다. 얻어들은 정보로는 매년 20~30만 명이 찾아온다는데 아무리 6월 중순이라지만 생각보다는 많이 적었다. 래프팅은 타원형 고무보트에 6~10명이 탑승해 강의 일정 구간을 가이드와 함께 여행하는 것이다. 여러 명이 호흡을 맞춰 강이나 계곡의 물길을 헤쳐나가며 자연을 만끽하는 아웃도어 활동이다.

문산나루터는 동강 물길이 휘돌아가는 곳의 넓직한 평지에 자리잡고 있다. 나루터 뒤는 강과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문산리 신촌생태마을이다. 마을은 뼝창마을 또는 금의마을로 불리기도 한다. 마을 앞 동강 건너편에 절벽이 펼쳐져 뼝창마을이라고 하는 것인데 뼝창은 강원도 사투리로 절벽이라는 뜻이다. 금의마을이라고 하는 것은 강 건너편 장성산 능선 위에서 내려다보면 비단옷(錦衣)을 두른 듯 마을이 아름답다고 해서 지어졌다.

동강과 잣봉 주변 지도

 

뼝창마을에는 장성산~잣봉으로 연결되는 등산로도 있다. 이곳에서 출발해 급경사의 장성산(백둔봉)을 거쳐 잣봉을 지나 어라연으로 내려가는데 4.8㎞, 잣봉의 메인 들머리인 거운분교까지 7㎞ 거리다. 뼝창마을에서 보트를 타고 숙소 부근의 섭새강변까지는 12㎞에 3시간이 소요된다. 수량이 많아 유속이 증가하면 2시간 남짓 걸리고 쉬엄쉬엄 내려가면 4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동강은 뱀이 기어가는 듯 강물이 굽이굽이 펼쳐진 사행천(蛇行川)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병풍처럼 두른 절경이 자랑이다.

 

동강은 인제 내린천, 철원 한탄강과 더불어 한국의 3대 래프팅 명소

동강의 발원지를 살펴본다. 강원도 태백산 검룡소에서 발원한 골지천이 평창 황병산에서 흘러내리는 송천과 강원도 정선의 아우라지에서 만나 조양강이라는 이름으로 정선 땅을 흐르다가 오대산에서 흘러내리는 오대천을 정선군 북평면의 남평 들녘에서 품에 안으면서 제법 큰 물줄기가 된다. 그러다가 정선군 고한읍에서 발원해 정선군 일대를 흐르는 지장천(동남천)과 정선읍 가수리에서 합류함으로써 비로소 동강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이렇게 여러 지역을 거치므로 동강의 물이 맑다고는 할 수 없다.

한강과 동강의 발원지인 검룡소. 2015년 촬영했다.

 

동강이 어떻게 한강과 이어지는지도 살펴보자. 동강은 51㎞를 흘러가다가 영월읍 하송리에서 서강을 만나 남한강 상류를 이룬다. 서강은 홍천군 계방산에서 발원해 평창 읍내로 흘러내리는 평창강이 횡성군 태기산에서 발원한 주천강을 받아들여 영월 서쪽으로 흘러들어가 동강과 합류한다. 지도상으로 동강은 영월읍 동쪽에 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동강이고 서강은 영월읍 서쪽에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남한강은 단양·충주·원주·여주·이천을 거쳐 경기도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만나 마침내 한강이 되고 이후 서울을 가로질러 서해로 흘러든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한강을 이루지만 본류는 남한강이어서 태백산의 검룡소를 한강의 발원지라고 하는 것이다. 이 두물머리에 우리가 모두 아는 친구가 살고 있으니 그가 바로 용화다.

동강은 인제 내린천, 철원 한탄강과 더불어 한국의 3대 래프팅 명소로 꼽히지만 전문가들은 그중 동강을 최고의 래프팅 명소로 꼽는다. 천혜의 비경에 강폭이 넓고 물살이 유순해 여울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번에 함께 한 친구들과 1년 전 철원 한탄강에서 래프팅을 해본 적이 있기 때문에 동강이 한탄강보다는 더 적지라는 것은 인정하겠으나 내린천에서는 해보지 않아 동강이 내린천보다 더 나은 곳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급류가 많은 내린천을 래프팅 체험의 최적지로 꼽는 전문가도 있기 때문이다. 기회가 되면 내린천에서도 래프팅을 해 국내 3대 래프팅 코스를 경험해보고 싶다.

 

보트 위에서 어라연 경관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게 가장 아쉬워

우리는 2개조로 나누어 고무보트에 탔다. 보트마다 인원은 1명의 가이드를 포함해 12명이다. 출발부터 곳곳에 기암절벽과 비경이 펼쳐진다. 협곡 양쪽 절벽에 뿌리를 내린 노송 군락이 굽이치는 동강과 어울려 운치를 더해주고 천혜의 비경을 뽐낸다. 다만 올해는 가뭄으로 수량이 많지 않아 물 흐름이 느리다. 해서 계속 노를 저어야 한다. 우리는 가이드가 “하나둘” 소리를 내면 우리는 구령에 맞춰 “셋넷” 하면서 노를 저었다. 그런데 다른 6인승 보트들이 계속해서 우리를 앞질렀다. 인원이 적어 노를 젓는 공간에 여유가 있는데다 젊기까지 해 쉽게 우리를 추월했다. 실제로 우리는 공간이 좁아 마음껏 노를 젓지 못했다.

래프팅 고무보트 위에서 포즈를 취했다.

 

노를 젓다 쉬다 반복하며 전진하니 코스 중간쯤에 어라연이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에 쫓기는 가이드가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아 어라연의 빼어난 경관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고 노를 젓는데만 급급했다. 이번 래프팅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어라연을 지나면 된꼬까리여울이 나타난다. 노련한 떼꾼들조차 두려워했다는 된꼬까리 여울은 뗏목이 고꾸라질 정도로 물살이 거칠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성능 좋은 래프팅 고무보트도 이곳을 지날 때는 여울 위쪽에서 단단히 각오하고 내려선다. 우리 가이드 역시 여울을 지나기 전 한쪽 발을 보트에 단단히 고정하라고 주의를 준다. 그런데도 약간의 급류에 휘말려 고무보트가 회전하는 경험을 했다. 이 때문에 선두에 앉은 창화가 두 번이나 강에 빠질 뻔했다. 그러나 창화는 대한민국 육군 장교 출신이다. 당연히 무사했다.

동강협곡은 강 옆의 절벽이 호위무사처럼 서있고 숲이 우거진 산의 연속이라 과장하면 밀림 속 계곡을 지나는 기분이다. 가족과 함께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라연과 된꼬까리여울을 지나니 한때 동강댐 예정지로 거론되었던 만지나루다. 정선 아우라지를 떠난 뗏사공들이 동강에서 가장 험한 물살인 문산나루터 상류에 있는 황새여울과 어라연 하류의 된꼬까리여울을 무사히 지나고나서 한숨을 돌렸던 곳이다.

 

래프팅 하며 물싸움 하니 40년 전 학창시절로 되돌아간 기분

래프팅에서 우리를 즐겁게 해준 것은 종서와 창민, 그리고 물싸움이다. 창민이는 종서가 노늘 젓는게 시덥잖아 보이는지 “노를 강물에 넣었다 빼기만 한다”며 놀린다. 사실 종서는 공학도답게 나름 효율적이라고 생각한 방식으로 노를 저은 것인데 창민이가 연신 놀려대니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종서의 이름을 어떻게 알았는지 아들뻘 되는 가이드까지 “종서님!” 하며 노를 열심히 저으라고 핀잔을 준다. 모두가 박장대소한다.

래프팅을 하며 물싸움을 하고 있다.

 

A조와 B조간의 노를 이용한 물싸움도 재미있다. 물싸움 때문에 온몸이 젖어도 곧 비가 내려 어차피 옷이 젖을 것을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참으로 흥겨운 추억이었고 40년 전 학창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다.

소나기가 조금씩 내릴 무렵 우측에 어라연상회가 나타났다. 래프팅족들이 반드시 들렀다 가는 곳이다. 강변에 보트를 정박하고 둑에 위치한 가게에 들어가자 바로 장대비가 쏟아진다. 강변이라 기온이 떨어지고 옷들이 모두 젖어 체온이 떨어질 것도 걱정이지만 그보다는 빗방울이 아플까봐 더 걱정이었다.

그러면서도 성인이 되어 도시에서는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어렸을 때나 경험했던 소나기를 맞을 것을 생각하니 오히려 기대감이 상승한다. 가게에서 파전과 도토리무침, 막걸리와 음료 등을 파는데 하필이면 막걸리가 떨어졌단다. 의례적으로 컵라면을 시켜 먹었는데 떨어진 체온 탓인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가게에서 내려와 보트를 타려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소나기가 그쳤다.

 

동강의 래프팅 코스는 여러개

종착점인 섭새강변에 도착한 것은 출발지를 떠나 3시간 정도 지난 후였다. 보트에서 내려 숙소까지 태워다 줄 버스에 올라타니 또 장대비가 쏟아졌다. 숙소 입구에 내려서도 비가 멈추지 않아 모두들 숙소 입구의 휴게소로 들어가 비를 피했다. 비가 그치지 않아 체온이 떨어지자 “핫둘핫둘” 소리를 내며 서로 몸을 비벼댄다. 추위와 바람을 피해 서로 몸을 붙이고 꼼짝않는 남극의 펭귄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렇게 첫날 잣봉 산행과 동강 래프팅이 끝을 맺었다. 개인적으로는 결심하기 어려운 동강 래프팅을 경험할 수 있도록 계획을 짜고 직접 현지를 답사한 구승, 상호, 창민이가 고맙다.

동강에는 우리가 래프팅을 했던, 가장 일반적이고 인기있는 이른바 ‘어라연 코스’ 말고도 여러 코스가 있다. 문산나루에서 2㎞ 정도 더 상류인 진탄나루에서 출발해 섭새강변까지 가는 편의상 A코스(14㎞) 코스도 있다.

왼쪽은 동강과 잣봉 주변 지도이고 오른쪽은 동강의 주요 래프팅 지역이다. 영민이가 그렸다.

 

상류 쪽 정선군 고성에서 출발해 절매나루터와 황새여울을 지나 진탄나루터까지 내려가는 B코스(13㎞)도 있고 더 아래쪽 문산나루터까지 가는 C코스(15㎞)도 있다. 이 코스 안에는 드라마 ‘어느별에서 왔니’의 촬영지인 제장마을(덕천취수장)과 영화 ‘선생 김봉두’의 촬영지인 연포마을이 있다. 장시간 래프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고성에서 출발해 거운교(섭새강변)까지 가는 6~7시간의 D코스(27㎞)를 즐기기도 한다. 거운교(섭새강변)를 출발해 삼옥교(별마로천문대입구)까지 내려가는 짧은 거리의 E코스(6~7㎞)도 있다.

 

우리가 작명한 ‘동수(同嫂)’ 단어, 언젠가 국어사전에 오르길 바래

숙소에 도착하니 봉만이가 우리를 맞는다. 등산과 래프팅은 함께 하지 못했지만 저녁이라도 함께 하고 싶어 아내와 함께 개별적으로 찾아온 것이다. 숙소는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있어 조용하고 쾌적했다. 시설도 깔끔했다. 공동 샤워실도 널찍하고 깨끗했다.

털보네농어촌민박 앞 동강 모습

 

모두가 젖은 몸을 씻는 동안 동수씨들과 석범이 저녁을 준비한다. 그들도 피곤할텐데 친구들을 먹이려고 희생한다.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동수’는 국어사전에 없는 조어다. 보통 친구들끼리 상대 친구의 아내를 형수나 제수라고 부르는 것을 통일하기 위해 산악회 초기 멤버들이 머리를 맞댄 끝에 편의상 만든 용어다. 형수나 제수에서 ‘수(嫂)’의 의미가 ‘결혼한 여자’이니 조어이긴 하지만 엉터리 조어는 아니지 않나 싶다. 우리가 작명한 ‘동수(同嫂)’라는 단어가 장차 널리 쓰인다면 언젠가 국어사전에 오르지 않을까 싶다. 그런날을 대비해 ‘동수(同嫂)’라는 단어가 우리 금동산악회에서 처음 사용했음을 기록으로 남긴다. 24인분의 식사를 한꺼번에 준비한다는 게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다.

오늘의 메뉴는 강원도 원주의 현희씨(구승 아내)와 경기도 이천의 영민씨(성일 아내)가 바리바리 싸온 그것도 자비로 마련한 돼지갈비와 김치찌개 그리고 각종 나물과 밑반찬이다. 현직 요식업계의 대부인 상호 아내도 팔을 걷어부쳐 실력발휘를 한다. 금동산악회에 면면이 이어지는 미덕이자 전통인 배려와 헌신이 동수씨들께도 그대로 옮겨간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동수씨들. 금동산악회의 보물이다.

 

야외에 설치된 긴 상에 나란히 앉아 먹고 마시니 그렇게 맛날 수 없다. 종서가 땀을 비질비질 흘리며 굽는 돼지갈비라 더 맛이 좋다. 식사와 음주 후 일부는 숙소 안으로 일부는 숙소 입구에 마련된 B급 노래방으로 이동해 부족한 알콜을 채우며 각자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숙소 실내파였으나 봉만이 손에 끌려 노래방으로 갔다.

 

B급 사이키 조명 아래에서 각자의 끼 발산시켜

나는 음치에다 심한 박치다. 음치보다 심각한 것이 박치다. 음은 외우면 대충 노래를 따라 할 수 있어도 박치는 외워지지 않아 구제불능이다. 워낙에 심한 박치다보니 블루스도 치지 못한다. 심지어 노래도 좋아하지 않는다.

노래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중학교 때까지 음악시간 실기 점수는 70점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도 고교 입학 후 합창반으로 뽑혀 스스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사실 내 모교인 대광고는 미션스쿨이어서 합창반의 실력이 전국 최고 수준이다. 김명엽 음악선생이 내게 맡긴 영역은 제2베이스였다. 박치여도 목소리는 저음에 괜찮으니 밑에서 음을 깔아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 제2베이스를 맡겼을 것이다. 덕분에 고1때 내 음악 실기점수는 늘 90점 이상이었다.

노래 실력이 이러니 노래방을 좋아할 리 없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노래방에 가게될 때는 술에 의지해 한두곡을 불러제낀다. 그날도 노래를 부르라는 성화에 “나 어떻게”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실내에서 이리뛰고 저리뛰고 의자에 오르고 탁자를 치고 고함을 지르니 거의 망나니 모습이었다. 당연히 음과 박은 따로 놀았다. 그런데도 창민이는 “어떻게 그렇게 편곡을 잘하냐”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그날의 노래방은 해방 공간이었다. B급 사이키 조명 아래에서 귀가해야 한다는 시간의 속박 없이 모두들 혼미해져갔다. 다행히 분위기가 질펀하지는 않고 깔끔했다. 구승 창민 창화 철호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이크를 잡고 마음껏 끼를 발산시킨다. 하나둘 노래방을 나와 숙소로 향한 시간은 12시 조금 지나서였다. 새벽 1시에 있을 우크라이나와의 2019 FIFA U-20 남자 월드컵 결승전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골을 넣거나 먹을 때만 눈을 떴을 뿐 대부분은 비몽사몽 속을 헤맸다.

거운교 아래 섭새강변에서 천렵을 하고 있다.

 

다음날 아침이 되니 8명이 이미 서울로 떠나고 없었다. 남아있는 우리들은 거운교 아래 섭새강변에서 천렵을 했다. 천렵은 역시 성일이가 전문이었다. 그의 캠핑카에는 족대, 투망, 어망 등 물고기를 잡는 온갖 도구가 있다. 우리가 잡은 것은 퉁가리, 꺽지, 미꾸라지 등 손가락만한 14마리가 전부였지만 그래도 그것을 넣어 라면을 끓이니 매운탕 맛이 그대로 살아난다.

성일은 요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많을 때는 200마리나 되었던 젓소를 최근 모두 팔아치우고 지금은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며 틈나는대로 올해 구입한 캠핑카에 동수씨를 모시고 전국을 돌아다닌다. 우리네 중년 남성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이상적인 삶이다. 소를 키우느라 옴짝달싹 못했던 지난날을 보상받은 것 같아 보기가 좋으면서도 부럽다.

18명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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