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중앙정보부 창설

5·16쿠데타 후 이틀이 지난 1961년 5월 18일 혁명 주도 세력의 한 사람인 김종필 중령이 같은 육사 8기인 서정순·이영근·김병학 세 중령을 불렀다. “미국의 CIA와 일본의 내각조사실을 절충한 정보수사기관을 만든다.” 18년 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해온 중앙정보부(이하 중정) 창설은 이 한마디에서 비롯됐다. 세 사람은 이화여고 앞 정동호텔에 자리를 잡고 머리를 쥐어짰으나 그들은 군인이었지 법률전문가가 아니었다. 결국 박정희 소장의 법무참모였던 신직수가 투입된 뒤에야 5월 말에 설립안이 김종필에게 보고되었다.

6월 10일 중앙정보부법이 법률 제619조로 공포되고, 이를 토대로 한 중정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직속으로 발족됐다. 김종필이 초대 부장을 맡은 중정 안에는 18년 뒤 한국정치의 새로운 실력자로 떠오를 한 젊은 장교도 포함돼 있었다. 최고회의 민원비서관이자 중정 인사과장 전두환 대위였다. 전두환은 1980년 중정 부장서리로 이른바 ‘서울의 봄’을 잠재우고 정치 전면에 등장해 중정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된다.

1962년에 들어서면서 중정은 일상적인 정보·수사업무 외에 민정 이양에 대한 준비작업, 헌법개정, 공화당의 모체인 재건동지회 비밀조직 등을 주도해 단순한 정보기관이 아니라 사실상 ‘정부 안의 또 다른 정부’로 군림했다. 1963년 박정희 의장이 대통령에 오르고 역대 부장들이 과도하게 충성 경쟁을 벌이면서 중정 주변에는 3공화국 내내 인권탄압, 정치사찰, 용공조작 시비가 끊이질 않았다. 이 때문에 정작 중요한 대북안보나 해외활동 기능까지 평가절하되는 딜레마에 처했다.

김종필 이후 김형욱·김계원·이후락·김재규 등으로 이어지는 ‘남산의 부장’들은 한국 현대사에 어두운 그늘을 남겼다. 중정은 1981년 1월, 전두환 정권이 국가안전기획부로 개명해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으나 문패만 바뀌었을 뿐 사찰과 조작은 여전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이름을 국가정보원으로 바꾸고, 원훈(院訓)도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에서 ‘정보는 국력이다’로 바꿔 업무에 큰 변화를 주었으나 정작 해야할 일을 소홀히 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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