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말라리아 치료제 ‘키니네’ 효과 밝혀져

모기를 매개로 발병하고 감염되는 말라리아는 인류를 가장 괴롭힌 질병 중의 하나이다. 알렉산더 대왕을 서른 셋에 단명하게 한 것도,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을 쓰러뜨린 것도 다름아닌 말라리아였다. 심지어 지구상에서 일어난 모든 전쟁과 전염병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보다 말라리아로 죽은 사람들의 수가 더 많다는 주장이 제기될 정도로 인류에게는 저승사자나 다름없었다.

오랫동안 치료 방법을 알지 못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야 했던 유럽인들에게 희소식이 전해진 것은 1630년대 초였다. 남미 식민지에 거주하는 스페인 사람들이 말라리아 치료에 효과적인 것으로 입증된 ‘키나’라는 나무껍질을 보내온 것이다. 이후 200년 가까이 많은 사람들이 키나 덕에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키나의 성분과 작용원리가 밝혀지지 않아 정식 의약품으로는 인정받지 못했다. 성분을 최초로 규명한 사람은 프랑스 화학자 피에르 펠레티에와 조지프 카방투였다. 1820년 9월 11일 이들의 노력으로 키나에서 분리한 ‘키니네(quinine)’라는 물질이 말라리아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키니네는 19세기가 끝날 때까지 말라리아 치료약으로서의 절대적인 명성을 이어갔다.

그래도 발병 원인과 감염 경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말라리아 연구에 나섰고 이로인해 단일전염성 질환 연구로는 유일하게 노벨상을 두차례(1902년, 1907년)나 수상했다. 말라리아를 학질 혹은 돌림병으로 부른 우리나라에서는 키니네가 말라리아 치료에도 쓰였지만 아이들의 젖을 떼는데도 사용돼 친숙한 가정 상비약으로 취급됐다. ‘금계랍(金鷄蠟)’으로 불린 키니네가 지독히 쓰다는데 착안한 우리 어머니들의 생활의 지혜였다. 금계랍은 1898년 2월 독립신문에 실린 우리나라 최초의 약품광고로도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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