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김지하 詩 ‘오적’ 파문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 시도로 정치·사회적인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1970년, 잡지 ‘사상계’ 5월호에 세상을 들끓게 한 시(時) 한 편이 발표됐다. “서울이라 장안 한 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중략)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 만하고 목질기가 동탁 배꼽같은 천하흉포 오적의 소굴이렸다.” 김지하의 담시(譚詩) 오적(五賊)이었다.

아이디어를 처음 제공한 사람은 사상계 편집위원 김승균이었다. 그는 사상계 5월호 주제인 ‘5·16쿠데타’에 맞춰 평소 알고 지내던 김지하에게 오적촌이라 불리던 동·서빙고동에 관한 장시를 청탁했다. 김지하는 당대의 힘있고 끗발있는 사람들을 ‘오적’으로 한데 묶어 그들의 부패와 타락상을 풍자적으로 시에 담았다. ‘오적’은 200자 원고지 40여 매 분량으로 사상계 18페이지에 걸쳐 게재됐다. 설마했지만 시중에 뿌려진 잡지가 거둬지고 김지하는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당국이 잡지를 더 이상 시판않겠다는 발행인 부완혁의 말을 믿고 김지하를 석방하면서 사건은 마무리됐다.

이처럼 조용히 끝날 수 있었던 사건이 사회적인 사건으로까지 비화한 것은 야당인 신민당이 정당사상 처음으로 기관지 ‘민주전선’ 6월 1일자 1면 전면을 털어 ‘오적’을 싣고부터였다. 사실은 오적 가운데 군장성 대목을 뺐기 때문에 오적이 아니라 ‘사적(四賊)’이었지만 일이 안되려는지 민주전선은 2~3면에 정인숙 사건과 현대판 아방궁 도둑촌 문제 등에 대한 국회발언 초록까지 실어 당국의 신경을 건드렸다.

6월 2일 새벽 1시50분경에 민주전선 10만 여부는 압수당했고 민주전선 편집국장 김용성은 구속됐다. 풀려났던 김지하도 김승균, 부완혁 등과 함께 북한을 이롭게 했다는 이유(반공법 위반, 반국가단체 찬양 고무 동조)로 구속됐다. 수사 형평을 맞추기 위해 신민당 총재 유진산도 조사했다고 해서 당시 중정 수사관은 거꾸로 김지하 등 5명을 오적이라 불렀다. 사상계는 이 사건이 빌미가 돼 통권 205호를 끝으로 폐간되고 김지하 등 관련자들은 보석으로 풀려나 2년 뒤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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