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구석구석

바위산 매력에 취하고 홍천강 풍광에 빠지고… 강원도 홍천 팔봉산에서

↑ 제2봉에 놓여있는 구름다리 위에서. 뒤의 오른쪽 봉은 제3봉이다.

 

by 김지지

 

2019년 5월 26일, 오늘의 산행지는 강원도 홍천의 팔봉산(八峰山)이다. 이름에서 단박에 알 수 있듯 8개 봉이어서 팔봉산이다. 충남 서산, 전북 익산, 경남 산청에도 같은 이름의 산이 있다. 5월인데도 덥다. 하순이라지만 5월 봄날에 기온이 30도를 넘어서는 건 아무래도 정상이 아니다. 내리쬐는 햇볕도 살갗을 벌겋게 달군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팔봉산의 8개 봉들

 

홍천 팔봉산의 최고봉은 327.4m이다. 높이로만 보면 만만하다. 그러나 막상 올라보면 간단치 않은 산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산 전체가 날카로운 바위산인데다 봉에서 봉으로 이동할 때마다 급경사와 절벽을 오르내려야 한다. 다행히 기암과 절벽 사이로 등산로가 잘 만들어져 있어 지루할 새 없이 등산의 묘미와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다. 산을 휘감고 흐르는 홍천강을 산 곳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팔봉산의 매력이다.

산행에 동행한 고교 친구들은 리더인 박창민을 비롯해 김득한, 김정형, 박영민, 이종서, 전영일, 탁철호, 홍창화, 황선근 등 모두 9명이다. 창민의 용의주도한 계획에 따라 2~3주에 한 차례씩 전국 100대 명산 위주로 산행을 하는 친구들이다. 모처럼 많이 모였다. 흥미롭게도 건축학을 전공한 친구가 4명이나 된다.

 

대협곡의 축소판 처럼 보이면서도 수석처럼 아기자기

주차장에서 팔봉산을 바라보니 도레미파솔라시도처럼 나란하다. 산줄기를 따라 불쑥불쑥 튀어나온 암봉들이 눈길을 끈다. 대협곡을 축소해놓은 것 같으면서도 수석처럼 아기자기하다. 높이가 300m에 불과한데도 100대 명산에 포함된 이유이기도 하다.

영민이가 그린 팔봉산 진행도

 

들머리는 홍천강을 가로지르는 팔봉교 건너편 제1봉 쪽이다. 8봉 쪽을 들머리로 삼을 수도 있으나 순리에 역행하는 코스다. 강변을 따라 1봉 들머리에서 8봉 입구까지 일부러 내려가야 하는데다 8봉 쪽 산행 코스가 거의 70~80도에 가까운 급경사이기 때문이다. 1봉 쪽 입구에 그려놓은 팔봉산 안내도를 보니 1봉에서 8봉까지 거리는 2.6㎞, 시간은 2시간 30분으로 되어 있다. 자세히 보면 불친절한 것을 알 수 있다. 거리가 2.6㎞라는데 1봉에서 8봉까지의 거리가 그렇다는 것인지 입구를 기점으로 올라가 8개 봉을 거쳐 1봉 입구 쪽으로 원점회귀하는 거리가 그렇다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산악전문지 <월간산> 기자에 따르면 출입구에서 출발해 8개 봉을 다 돌고 원점회귀하는데 3시간 안팎 걸린다. 거리는 4㎞ 정도다,

팔봉산은 전국의 다른 산들과 달리 입장료를 받는다. 성인 기준 1500원이다. 입구에 그 이유가 적혀 있다. 국립공원은 입장료를 징수하지 않아 생기는 손실보전금을 정부로부터 받지만 팔봉산은 지원 대상에서 빠져 홍천군이 자체 조례를 근거로 입장료를 징수한다고. 나는 평소 적당한 입장료를 받는 것에는 찬성하는 입장이어서 별 불만은 없지만 창민이가 깎아달라고 매표소 직원에게 농담을 건넨다.

등산로 입구에 남근석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옛날 팔봉산에서 사고가 끊이지 않자 한 노인이 “풍수적으로 음기가 쎄서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다산의 상징인 남근석을 입구에 세워 음기를 중화시켰더니 사고가 줄었다는 것이다. 입구의 철판 다리 양쪽에 현수막이 걸려있다. 한결같이 핑크색이다. 예전엔 핑크색을 보면 자연스럽게 따뜻함이 떠올랐는데 요즘은 동성애가 먼저 연상된다. 세상의 급변을 실감한다.

제3봉에서 내려다본 홍천강 모습

 

최고봉은 327m, 최저봉은 232m

8개 봉 높이는 각기 다르다. 최고봉은 제2봉(327m)이고 가장 낮은 봉은 232m인 제7봉과 제8봉이다. 제2봉으로 올라간 뒤에는 325m(3봉), 320m(4봉), 310m(5봉), 288m(6봉), 232m(7·8봉)로 계속 낮아진다. 제1봉(275m)으로 올라가는 초반부는 급경사 흙길이다. 숲이 우거져 햇빛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급경사라 모두 땅만 응시한 채 오른다. 비탈길을 따라 10분쯤 올라가니 날카롭게 날이 선 암벽이 나타났다. 본격적인 바윗길의 시작이다. 다시 적당한 거리를 올라가니 강원 내륙의 수많은 산봉우리들이 파도처럼 주변에 솟구쳐 있다. 소나무가 뿌리내린 절벽 아래로는 홍천강이 유유히 흐른다. 이처럼 시원스럽게 주변을 조망하는 전망대는 하산할 때까지 곳곳에 있다.

제1봉으로 오르는 초반부의 흙길. 대원들이 말이 없다.

 

그런데 제1봉에 오르기도 전에 현기증이 난다. 친구들이 너도나도 나를 챙긴다. 아스피린을 주거나 사탕을 건네거나 집에서 얼려 가지고 온 오디액을 마시라고 권한다. 산에서 환자 대접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기분이 좋다. 한 친구가 지난주 내가 지리산 2박 3일 종주한 것 때문에 기가 빠진 것 같다고 알려주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간밤에 잠을 자지 못한 게 원인인 것 같다. 나는 실제로 잠이 부족하면 산행이 힘들다. 남들은 멀리 산행을 갈 때 기차나 버스를 타고 밤을 지샌 후 새벽에 오르지만 나는 버스나 기차에서 전혀 잠을 자지 못하기 때문에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결국 나와는 맞지 않는 방법이란 걸 깨달고 그후로는 무박산행을 하지 않는다.

 

등산이 두발로만 하는 것 아니라 두손과 두팔 모두 써야 한다는 것 가르쳐줘

현기증 때문에 잠시 쉬었다가 올라가니 비로소 제1봉이다. 들머리에서부터 37분 걸렸다. 제1봉을 가리키는 표지석이 작고 앙증스럽다. 봉과 봉으로 이어지는 길마다 좁고 외길이어서 병목 현상이 반복된다.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면 기다려야 한다. 우리도 1봉 앞에서 한동안 기다렸다가 단체로 기념촬영을 했다. 1봉 이라고 모두들 손가락으로 ‘1’자를 표시했다.

제1봉 표지석을 둘러싸고 사진을 찍었다. 손가락으로 1을 가리키는 것은 1봉을 의미한다.

 

제2봉에 오르려면 다시 계곡으로 내려가야 한다. 앞으로 8봉까지 철봉난간, 철계단, 로프를 이용해 계속 오르내려야 한다. 철로 만든 디딤판도 급경사 바위마다 단단하게 박혀있다. 덕분에 등산이 두 발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두손과 두팔을 모두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산행 다음날 두 팔 모두에 알이 배겨 뻑적지근하다.

제1봉에서 제2봉까지는 25분 걸렸다. 2봉이 최고봉이어서 그런지 8개 봉 유일하게 높이(327m)를 적어놓았다. 표지석 옆 건물은 삼부인당(三婦人堂)이다. 400여년 전 이씨·김씨·홍씨 등 세 며느리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이후 마을의 평온과 풍년을 기원하고 액운을 막는 당굿을 매년 이곳에서 올린다. 삼부인당 앞 허공에는 더 많은 곳을 조망할 수 있도록 10m 정도 길이의 구름다리가 세워져있다. 그곳에서 바라보이는 3봉이 우뚝하고 날렵하다. 홍천강의 휘어진 모습도 더욱 분명하다. 팔봉산은 어느 봉이든 일단 오르기만하면 이렇게 주변 풍광이 시원하게 터져있다.

사진처럼 오르고 내리고를 8번이나 반복한다.

 

체력 달리는 사람들 위해 중간에 하산길 많아

제3봉에서는 8봉까지의 암봉 모두가 한눈에 들어온다. 3봉에서 4봉으로 이어지는 철계단 끝에는 자연동굴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올 정도로 좁아 이곳을 통과하는 것이 마치 산모가 애를 낳을 때처럼 힘들다고 해서 ‘해산굴’로 불린다. 그런데 이곳을 통과해 4봉으로 오르려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자주 적체 현상이 일어난다. 이럴 때는 오른쪽 우회 길을 이용하면 4봉에 오를 수 있다.

8개 봉 표지석들. 하나같이 앙증맞다.

 

이후 5봉, 6봉, 7봉으로 이어진 산길은 기복이 그리 심하지 않다. 봉우리 중간에 다리를 놓은 곳도 있어 산행이 한결 수월하다. 하지만 7봉과 8봉 사이의 안부는 제법 깊어서 한참을 내려가야 한다. 8봉으로 오르는 마지막 길목에는 ‘초심자와 노약자는 8봉으로 오르지 말고, 이곳에서 강변으로 하산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다. 체력이 달리면 이곳에서 계곡길을 따라 홍천강으로 내려가라는 것이다. 2봉과 3봉, 5봉과 6봉 사이에도 북쪽 강변으로 내려서는 하산길이 있다. 8봉 꼭대기에 서면 널찍한 암반이 펼쳐져 있고 노송 한 그루가 있다. 노송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 채 힘들게 올라온 등산객을 반겨 맞고 있다.

 

하산 후 양푼에 버무린 고추장 비빔밥과 박장대소의 향연 펼쳐져

제8봉를 뒤로한 채 시작되는 마지막 하산길은 험한 내리막의 종합편이다. 70~80도 정도 깎아지른 급경사 구간의 수직 계단으로 내려가니 바로 강변이다. 12시 48분이니 3시간 10분 정도 걸린 셈이다. 하산 후 원점회귀 구간은 강변을 따라 제1봉의 들머리로 가는 것이어서 편안하고 호젓하다. 홍천강의 시원한 바람과 물이 더위를 식혀준다.

급경사 하산길에서 찰칵

 

원점회귀하니 시계가 오후 1시를 가리켰다. 총 3시간 20분 정도 걸렸다. 산행 중 마땅한 장소가 없어 점심을 하지 않은 우리가 점심을 해결할 장소로 정한 곳은 팔봉교 교각 아래다. 그곳의 그늘과 바람과 강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양푼에 버무린 고추장 비빔밥과 박장대소의 향연이 또다시 펼쳐졌다.

9명 친구들의 표정이 제각각이다. 선근이가 편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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