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사도세자. 뒤주에서 8일간 몸부림치다 사망

조선조 19대 임금 숙종은 나인 출신의 희빈 장씨로부터 균을, 무수리 출신의 숙빈 최씨로부터 금을 얻었다. 숙종 사후 균은 경종이 됐고 금은 영조가 됐다. 그러나 세자 균이 경종으로 즉위하기 전부터 병약한 탓에 조정은 경종과 영조의 즉위를 둘러싸고 당파간의 죽기살기식 암투로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소론은 경종을, 노론은 영조를 지지했다.

경종 즉위 후 승자가 된 소론은 ‘신임사화’ 등을 일으켜 수십·수백의 노론을 처형하거나 유배시켰다. 경종이 재위 5년 만에 병사하자 노·소론의 치열한 당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생명의 위협을 면하고 가까스로 왕위에 오른 영조는 붕당의 폐해를 막기 위해 탕평책을 썼다. 그러나 고질화된 붕당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 만무했다. 영조의 유일한 혈육인 세자 선을 둘러싸고 또 당쟁이 재연된 것이다. 영조가 건강상의 이유로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하게 하자 세자를 등에 업으려는 소론·남인과 이를 저지하려는 노론이 다시 맞붙었다.

한때는 총명했던 세자도 잦은 무고와 되풀이되는 영조의 질책으로 정신병적 성향을 보이며 잇단 비행을 저질렀다. 영조도 편집증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영조는 세자를 폐위하고 서인으로 강등시킨 후 1762년 5월 13일(음력) 뒤주 속에 가뒀다. 초여름 8일간 물 한모금도 마시지 못한 세자는 뒤주에 갇혀 절망과 분노를 토해내며 몸부림치다 숨을 거뒀다. 5월 21일이었다. ‘사도(思悼)’는 훗날 이를 후회하고 애도한다는 뜻으로 영조가 내린 시호이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