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대한민국 여자농구, 세계여자농구대회에서 사상 첫 준우승

1967년 4월 15일, 세계 11개국이 참가한 제5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가 체코에서 개막되어 8일 간의 열전에 돌입했다. 한국으로서는 공산권 국가에서 개최된 국제대회의 첫 출전이었다. 남북 간의 긴장이 고조될 때였던 탓에 우리 선수단은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대회에 임했다. 게다가 북한의 공관원들이 우리 선수들이 묶는 호텔방에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선전물을 매일 집어넣고 선수들이 화장실에 갈 때도 따라다니며 괴롭혀 선수들의 정신 상태는 극도로 예민해 있었다. 급기야 이에 항의하던 한국선수단 단장이 대회 중반에 추방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예선전 같은 B조에 속한 쿠바의 갑작스런 불참이었다. 한국팀의 평균신장 168㎝는 평균 신장이 190㎝나 되는 동유럽팀에 비하면 절대적으로 열세였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은 탄탄한 기본기와 두뇌플레이로 예선전 두 경기에서 이탈리아를 76대 56으로, 전년도 준우승팀 체코를 67대 66의 근소한 차로 이기고 결승리그에 진출했다. 6개국이 진출한 결승리그에서도 동구의 강호 동독과 일본을 연달아 격파했다. 그러자 결승리그에 진출한 것만으로도 만족해 하고 있던 국민들이 서서히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 대회를 2연패하고 평균신장이 25㎝나 큰 소련에는 역시 역부족이었다. 결국 81대 60으로 패했다. 그럼에도 4월 22일 마지막 상대인 유고를 제물로 삼아 종합전적 4승 1패로 준우승을 거머쥐었다. 한국 구기종목 사상 첫 세계대회 은메달이었고, 전 국민을 열광시키고 세계를 놀라게 한 쾌거였다. 박신자 선수는 우승팀 최고 스타에게 주는 관례를 깨고 세계대회 출전 사상 첫 최우수선수상(MVP)를 수상했다. 김추자 선수는 미기상을 받았다.

5월 7일 선수단이 귀국하자 한국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김포공항에서부터 서울운동장까지 20㎝에 걸쳐 환영 카퍼레이드가 펼쳐졌다.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환영회에는 3만 여명의 인파가 모여 준우승을 축하해주었다. 박 선수는 이때의 활약을 인정받아 세계여자농구 사상 최고 선수․지도자 26명 가운데 동양인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되어 1999년 미국 여자농구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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