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정치깡패들, 고려대생 피습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로 전국이 들끓던 1960년 4월 18일 낮 12시50분, 3000여 명의 고려대 학생들이 “민주역적을 몰아내자”며 교정문을 박차고 시내로 행진했다. 안암동∼신설동∼종로를 거쳐 국회의사당(현 태평로 서울시의회 건물) 앞에 도착한 학생들은 1만 여명 시민들의 호응을 받으며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유진오 총장과 선배 이철승 의원의 설득으로 농성을 푼 시간은 오후 6시40분이었다.

질서정연하게 귀교하는 학생들의 뒤를 7대의 버스와 2대의 트럭에 나눠 탄 경찰들이 따랐다. 7시20분경 을지로4가를 지나던 시위 대열이 종로4가로 방향을 틀었다. 앞서가던 경찰 백차가 방향을 종로로 바꾸자 시위대도 무심결에 그 방향을 따른 것이다. 종로4가 천일백화점(현 광장시장)앞에 이르렀을 무렵 갑자기 어둠속에서 60여 명의 깡패들이 나타나 쇠갈고리, 쇠망치, 쇠사슬 등을 휘두르며 학생들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야습에 1명이 숨지고 학생 40여 명과 기자 6명이 피를 흘리며 현장에 쓰러졌다.

이 날의 폭력장면은 4월19일자 조선일보 사회면에 ‘폭력이 휩쓴 서울의 야음(夜陰)’이란 제목의 기사와 함께 사진으로 생생하게 보도됐다. 조선일보 정범태 기자 만이 유일하게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을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사진이 준 충격과 분노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서울 시내 학생들이 성난 파도처럼 거리로 뛰쳐나왔고 4·19혁명의 물결은 도도하게 전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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