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사망

 

1955년 4월 18일,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미국 프린스턴 병원에서 잠을 자다 향년 76세로 숨을 거뒀다. 세기의 벽두에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함으로써 현대 물리학의 새 패러다임을 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그는 1879년 독일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1905년 봄 베른의 스위스 특허국에서 심사관으로 일하던 중 발표한 논문 ‘운동하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대하여’는 그의 이름이 천재적인 과학자의 대명사로 불리우게 된 첫 성과였다. 현대 물리학의 새 장을 열어젖힌 ‘특수상대성이론’이 세상에 첫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후 유럽의 저명한 물리학자 대열에 끼게 된 아인슈타인은 1916년에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해 물리학자로서의 확고한 지위를 구축했다. 이 연구 결과로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으나 1933년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 프린스턴고등연구소 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천재는 실험실과 상아탑에만 머물러있지 않았다. 냉전의 조짐이 확연하던 시대에 자신이 사회주의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는가 하면 1950년대 미국 매카시즘의 광풍에 맞서 불복종운동을 전개했던 진보적 지식인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전쟁의 영원한 종식을 꿈꾸었던 반전평화주의자였다. 이러한 그의 세계관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그 와중에 유럽을 휩쓴 반유대주의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목도하면서 형성된 것이었다. 그러나 1939년 8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친필로 서명한 편지에서 핵반응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해 평화주의자 아인슈타인의 이력서에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훗날 “내 생애에서 가장 커다란 잘못은 그 편지에 서명한 것”이라고 술회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똑같이 경멸한 사회주의자였던 그는 미국 내 소수인종을 위해서도 힘썼다. 이같은 정치적 입장으로 그는 나치의 ‘처단 명단’에 올랐고, 에드거 후버 FBI 국장의 1급 감시대상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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