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레닌 ‘봉인열차’타고 러시아로 귀국

1917년 ‘2월 혁명’이 성공했을 때 레닌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었다. 1900년 외국으로 망명한 후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 때 일시 귀국한 것을 제외하고는 기나긴 망명생활의 연속이었다. 어느덧 그의 나이 47세. 30여년 동안 혁명을 위해 몸바쳐온 삶이었지만 좀처럼 희망의 빛이 보이질 않았다. 혁명에 대한 열정도 점차 식어가고 있었다.

그런 무렵에 조국 러시아에서 ‘2월 혁명’이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레닌은 페트로그라드에서 일어난 이 사건이 1905년 때처럼 좌절한 폭동인지 아니면 진짜 혁명인지를 분간할 수 없어 귀국을 결심했다. 그러나 차르(황제) 타도 후 구성된 러시아 임시정부와 2차대전에 참전 중인 연합국은 “제국주의 전쟁 반대”를 외치는 레닌의 귀국을 원하지 않았다.

고심 끝에 레닌은 연합국과 러시아의 적국인 독일을 통과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독일 군부도 전쟁 반대를 외치는 레닌을 러시아로 보내 전쟁 의지를 약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1917년 4월 9일, 레닌과 32명의 러시아 망명가들이 훗날 ‘봉인(封印)열차’라고 불리게 될 열차를 타고 취리히역을 출발했다. 등 뒤에서는 망명 잔류 러시아인들이 레닌을 향해 “배신자!” “매국노!” “독일 앞잡이!”라며 비난을 쏟아냈다.

열차는 문을 봉인한 채 여권과 짐 검사도 없이 스위스 국경을 넘어 독일을 통과한 뒤 스웨덴(중립국)과 핀란드를 거쳐 4월 16일 밤, 혁명의 도시 페트로그라드 핀란드역에 도착했다. 역 광장은 레닌을 환영하는 군중들로 넘쳐났고 레닌은 그들을 향해 “전세계 사회주의 혁명”을 외쳤다. 그리고 이튿날 레닌은 저 유명한 ‘4월 테제’를 발표했다.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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