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당대 문명의 총결산 ‘파리 만국박람회’ 개막

1900년, 20세기의 개벽을 알린 첫 전령사는 ‘파리 만국박람회’였다. 박람회는 19세기와의 작별을 고하고 신세기를 전망하는 당대 문명의 총결산이었다. 그해 열린 파리의 지하철 시대도, 두 번째 열린 올림픽도 단지 박람회 행사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1900년 4월 14일 개막돼 200일 동안 파리 상드마르스 공원에서 열린 박람회에는 세계 25개국의 국가관이 세워졌고 무려 4000만 명의 관객이 신문명과 교유했다. ‘움직이는 보도’가 처음 선보였고 토키영화가 상영됐으며 1만 개의 전등이 밤거리를 밝혀 20세기가 전기의 시대임을 예고했다.

무엇보다 이미 전 세기 말에 만개하고 세기의 문턱을 넘어선 ‘아르누보’ 예술이 곳곳에 선보여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르누보 양식을 채택한 진열관들은 곡선과 화려한 색채를 조화시킨 건축미를 뽐냈고 건물 구조는 최신의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 견고함을 자랑했다. 미술기획전에는 출품작만 5000여 점이 전시돼 미술박람회를 방불케 했고, 드가·마네·모네·르누아르·세잔 등도 기획전에 이름을 등재함으로써 최고 화가의 반열에 올랐다. 19살 피카소도 스페인관에 그림 한점을 내걸어 파리와의 인연을 시작했다.

박람회장에는 조선정부가 마련한 ‘대한제국관’도 설치돼 ‘은둔의 나라’ 조선의 존재를 서양에 알렸다. 전시관은 경복궁 근정전처럼 당당했으며 사각형 건물에 기와를 얹은 모양이었다. 프랑스 건축가 페레가 설계했고, 조선 정부가 법부 고문으로 파견한 프랑스인 크리마지가 건물을 지었다. 도자기·칠보공예·장롱·악기 등이 전시·판매됐고 폐막 뒤에는 박물관에 기증돼 우리 공예품을 유럽 땅에 알리는 문화사절로서의 기능을 했다. 이밖에도 서양화가 휴버트 보스가 그린 고종황제 어진(御眞)과 중추원 의관 민상호의 초상화도 박람회에 출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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