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서울농대생 김상진, 유신정권 항의하며 할복 자살

유신체제의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2월 12일)에서 73%의 지지를 얻은 유신정권이 여세를 몰아 기자협회보를 폐간(3월 10일)하고 긴급조치 7호를 선포(4월 8일)하는 등 더욱 강경으로 치닫던 1975년 4월 11일 오전11시. 수원에 있는 서울농대에서 ‘구속학생 석방을 위한 자유성토대회’가 열렸다.

대회가 막바지에 이르자 축산학과 4학년 김상진이 연단에 올라 양심선언문을 읽어내려갔다. 낭독이 거의 끝나갈 즈음 “…이 보잘것없는 생명, 바치기에 아까움이 없노라…”는 말이 나오고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김상진이 돌연 품속에서 과도를 꺼내 자신의 배를 그었다. 수원도립병원으로 급히 실려가 두 차례 수술을 받았으나 상태가 악화돼 이튿날인 4월 12일 서울대병원으로 옮기던 중 앰뷸런스 안에서 눈을 감았다. 오전 8시 55분이었다. 민주화를 향한 학생운동사에서 목숨을 던진 첫 희생자였다.

유신정권은 그가 반 유신의 상징으로 남지않게 하기 위해 숨을 거둔지 15시간 만에 장례식도 없이 화장을 강행, 가족들의 분노를 샀다. 학우들은 장례식도 치르지 않은 채 김상진을 보낼 수는 없었다. 경찰의 집요한 방해에도 장례식이 준비됐다. 5월 22일 오후 1시, 꽹과리 소리를 신호로 도서관 앞 광장에 모인 1000여 학생들이 “의로운 죽음 암장이 웬말이냐”는 플래카드를 펼쳐들고 ‘반독재선언문’을 낭독했다. 56명이 구속된 이 사건을 학생운동사는 세칭 ‘오둘둘(5·22)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