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대한민국(大韓民國)’ 국호 제정

1919년 4월 11일 열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의정원 회의가 특히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결정되었다는 데 있다. 그날 회의에서 ‘대한민국’ 국호를 처음 제안한 사람은 신석우였다. 그는 나중에 경영난에 빠진 조선일보사를 인수, 이상재를 사장에 추대하고 자신은 부사장으로 물러나 있으면서 조선일보를 민족지로 키우는데 힘썼던 인물이다.

임시의정원 회의에 ‘대한민국’ 국호가 논의에 붙여지자 논란이 적지 않았다. 여운형이 “대한이란 말은 조선왕조 말엽 잠깐 쓰다가 망한 이름이니 부활시킬 필요가 없다”며 반대하고 나서자 신석우가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며 맞받아쳤다. 결국 표결에 붙여진 끝에 ‘대한민국’이 정식 국호로 채택되었다.

‘대한민국’에서 ‘민국’은 중국의 신해혁명 이후 불리기 시작한 ‘중화민국’ 국호의 영향을 받았다. ‘대한’이란 국호는 1897년 고종이 중국 청나라로부터의 독립국임을 강조하기 위해 황제를 칭하고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꾸면서 처음 등장했으나 1910년 8월 일제의 합병조약에 따라 사용이 금지되었다. 일제는 통감부 칙령으로 ‘대한제국의 국호를 고쳐 지금부터 조선이라 칭한다’고 발표하고, 가쓰라 일본 총리가 천황의 재가를 받아 ‘대한’ 사용을 금지시켰다.

일제 강점기에 실체없는 국가의 이름으로 중국 땅에서만 불려오던 ‘대한민국’이 비로소 자기 이름을 다시 찾은 것은 1948년 제헌의회가 구성된 뒤였다. 1948년 7월 1일 제21차 제헌국회 본회의장에서 제헌의원들이 헌법기초위원회가 제출한 헌법을 심사하고 있었다. 먼저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조항부터 심의에 들어갔다. 이에앞서 5월 31일 열린 국회 개원식에서 의장으로 선출된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국호로 사용함에 따라 ‘대한민국’은 이미 제헌의원들 간에 대세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참석자들은 이념적 성향에 따라 ‘조선’ ‘고려’ 등 여러 이름을 후보로 올렸다. ‘대한’을 국호로 사용하자는 측은 망국 직전까지 사용했던 국호(대한제국)이니 광복의 의미가 있고, 3․1운동 이후에도 사용된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여기에 이승만이 “국호 명칭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말자”고 요청하자 위원들이 재청․삼청으로 원안을 통과시키려 했다. 그때 조봉암 의원이 “대한민국이란 명칭은 천만부당하다”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결국 의회는 거수 표결에 들어가, 재석 188명에 찬성 163명, 반대 2명으로 통과시켰다. 한민족의 새 역사를 열어나갈 신생국의 국호가 ‘대한민국’으로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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