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와우아파트 붕괴… 무리한 고속개발에 대한 첫 대규모 경고음

31고가도로, 강변도로, 남산 1·2호 터널 등 불도저식 개발이 서울 전역에서 숨가쁘게 이어지던 1970년 4월 8일 오전 6시20분, 서울 마포구 창전동 산2번지에 위치한 와우시민아파트 한 동(棟)이 폭삭 주저앉았다. 이 붕괴사고로 아직 새벽잠이 덜 깬 주민 70여 명 중 33명이 압사하고 수십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4개월 전 준공된 5층짜리 와우아파트는 박정희 대통령과 김현옥 서울시장이 야심차게 추진한 달동네 재개발사업의 효시였지만 이 사고로 부실공사의 대명사가 됐다. 원인은 부실시공이었다. 건물을 60도나 경사진 와우산 중턱에 세운데다 기둥에 쓰인 철근도 규격보다 적게 쓰고 시멘트 배합량도 기준에 미달하는 날림공사가 원인이었다.

와우아파트 참사는 우리 사회의 취약한 지반을 만천하에 까발린 계기가 됐고 무리한 고속개발에 대한 첫 대규모 경고음이었다. 결국 서울시의 무사안일과 눈앞의 이익에 만 급급한 건설업자의 과욕, 여기에 사회 전반에 만연된 고속성장에 대한 조급증과 안전불감증이 총체적으로 빚어낸 인재(人災)였다. 그 즈음 서울시민회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 가수 조영남은 ‘신고산타령’의 가사를 “신고산이 우르르 와우아파트 무너지는 소리에…”로 바꿔 불렀다가 기관원에 끌려가 혼쭐이 나기도 했다.

시인 김정환은 와우아파트를 이렇게 묘사했다. “하늘에 거대한 구멍이 뚫린 듯, 희망이 산산박살난 듯/ 와우 아파트는 무너져내린 다음에도/ 와르르 소리를 여전히 외치고/ 와르르 소리는 그 밑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판잣집들을 아직도 덮치고 있었다/ 거대한 것이 약한 것을 짓누르고 있었다”(와우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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