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간디의 ‘소금 행진’… 식민지 권력에 정면으로 항거

↑ 간디의 ‘소금 행진’

 

1930년 4월 6일, 모한다스 간디가 3주 동안 386㎞를 걸어 서부 해안가 단디에 도착했다. 3월 12일 출발 때만 해도 78명 만이 그와 함께 했으나 도착 무렵에는 어느덧 수만 명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훗날 ‘소금 행진’이라 불린 고난에 찬 간디의 이 행진은 지나는 마을 주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과 호응을 받았다. 그 때마다 간디는 소금의 제조·판매를 독점하려는 영국 식민지 정부를 규탄했다. 사람들은 그런 간디의 호소에 귀를 기울였다.

도착 다음날 간디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소금세법이 금지하고 있는 해안에서 소금을 채취하자 지지자들도 그를 따라 항아리와 냄비에 염수를 담아 소금을 만들었다. 그것은 단순히 ‘소금세법’에만 국한된 항의가 아니었다. 식민지 권력에 정면으로 항거한 상징적인 행위였다.

‘소금 행진’ 후, 인도 각지에서는 식민지 정부의 소금세에 항의하는 소금의 제조·판매가 성행했다. 숫자상으로는 미미했지만 그들이 보여준 용기와 결단은 지금까지도 인도 역사에 선명히 기록되고 있는 자급자족을 향한 험난한 여정의 본격적인 출발이었다. 6월 우기를 맞아 소금운동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으나 간디가 천명한 이 ‘시민적 불복종’이 다시 인도인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제2차 비폭력·불복종 운동이 전개된 것이다.

수천의 도시와 마을에서는 영국 상품을 불태우는 불길이 하늘을 밝혔고 손으로 짠 무명베옷 차림의 항의군중들은 철로에 드러누웠다. 경찰이 곤봉을 휘둘러도 군중들은 맞기만 할 뿐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머리가 터져도 폭력으로 저항하지 않고 그 자리에 쓰러져 영국의 폭력성을 전세계에 고발했다. 간디와 네루 등 6만 여명이 투옥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다쳤으나 인도인들에게는 훈장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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