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미 연방대법원, 핵기밀 소련에 넘겼다는 혐의로 로젠버그 부부에게 사형 선고

1949년 8월에 성공한 소련의 원자폭탄 실험은 미국을 당혹감에 빠뜨렸다. 당분간 원폭을 독점하려 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미국의 원폭개발계획에 관계했던 영국의 핵물리학자 클라우스 훅스가 8년 동안 소련에 원폭기밀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1950년 2월 영국 정보기관에 체포되었다. 미국도 공범자 색출에 나서 첩보요원 해리 골드와 미국 로스알라모스 연구소에서 일하는 그린글래스를 용의자로 체포했다.

그린글래스가 자신의 매형인 줄리어스 로젠버그에게 핵기밀을 제공했다고 실토함에 따라 1950년 7월 로젠버그와 그의 부인 에셀 로젠버그가 연행됐다. 혐의는 이들 부부가 전달한 핵기밀이 해리 골드를 거쳐 뉴욕 주재 소련 부영사에게 넘어갔다는 것이다. 로젠버그는 한때 공산주의자로 활동했던 전력 때문에 미군 통신대에서 실직한 전기기사였다.

1951년 3월 시작된 재판은 냉전 고조와 매카시즘 선풍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빠르게 진행됐다. 한달도 채 안된 1951년 4월 5일, 연방재판소는 범행을 계속 부인하는 로젠버그 부부에게 그린글래스의 증언 만을 거의 유일한 근거로 삼아 사형선고를 내렸다. FBI 국장 에드거 후버는 이 사건을 “세기의 범죄”라고 규정하고, 담당 판사는 “이들의 배반으로 인류의 역사가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세계여론은 들끓었다. 증거가 부족하고 원폭 독점이 무너진 냉전기의 정치적 반동으로 조작 의혹이 짙다는 것이다. 교황을 비롯 아인슈타인, 러셀, 사르트르 등 세계의 지성들도 항의서한을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에 보내 구명운동을 펼쳤지만 아이젠하워는 받아들이질 않았다. 1953년 6월 19일 오후 8시 6분, 줄리어스가 먼저 전기의자에 앉았고 에셀이 뒤를 따랐다. 이 사건은 드레퓌스 사건 이후 서방세계를 가장 들끓게 한 사건이었지만 그 실체가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아 지금까지도 논란에 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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