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천왜성(順天倭城)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 100여 척의 배에 나눠 타고 쓰시마를 출발하면서 임진왜란 시작돼
“16세기 후반 오랜 세월의 전란을 제패하고 일본 천하를 자신의 손에 넣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는 조선과 중국을 지배하려는 망상에 빠지게 된다.… 1590년에는 ‘명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니 길을 내라’ 즉 향도정명(嚮導征明)을 내세운다. 동아시아의 정세를 잘못 판단한 히데요시는 조선이 거부하자 조선 침략을 위한 전쟁을 준비한다. 조선 침략의 전진기지이자 총사령부의 본진이 자리하고 있었던 곳이 바로 규슈에 있는 나고야(名護屋) 성이다.”
일본인 카도와키 마사토(門脇正人)씨가 쓴 <조선인 가도(街道)를 가다>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나고야 성에 집결한 전국의 다이묘(大名)는 130명이 넘었다. 그들은 나고야 성을 중심으로 반경 3㎞ 이내에 있는 구릉에 진영을 구축했다. 히데요시가 이곳에서 조선 침략을 위한 야욕의 불을 지핀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제1군에서 제9군까지 15만이 넘는 대군이었다.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1555~1600)가 맡은 제1군이 1592년 4월 12일 100여 척의 배에 나눠 타고 쓰시마를 출발, 다음날 부산에 상륙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나 1597년 2월 히데요시는 14만의 군대를 동원해서 조선을 재침략했다. 정유재란이 시작된 것이다. 정유재란은 당초부터 왜군에 불리했다.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1562~1611)의 부대가 12월 말에서 1월 초까지 울산에 성을 쌓고 지구전을 폈으나 대세는 이미 기울고 있었다.
<일본군은 히데요시의 죽음을 비밀에 부치고 퇴각한다. 순천성에서 퇴각하는 고니시 유키나가 군대와 이순신 장군이 일전을 벌인 전투가 노량해전이다. 11월 26일 고니시의 군대가 철수함으로써 7년간의 침략 전쟁은 막을 내린다. 안타깝게도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다.>
나는 이런 전쟁의 역사를 더듬어보기 위해서 과거 전남 순천에 간 적이 있다. 무안공항과 일본의 기타규슈 간 항로가 개설됨에 따라 일본 관광객 유치를 위한 자문을 위해서다. 나 말고도 여러 사람이 있었으나 일본인 오오야마 미요씨가 동행했다.
‘순천왜성(順天倭城)’, 왜장인 고니시 유키나가가 순천에 구축
먼저 둘러본 곳은 순천왜성(順天倭城)이다.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 있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171호다. 임진왜란 당시 왜장인 고니시 유키나가가 구축한 것이어서 ‘왜성(倭城)’이라 부른다.
고니시가 조선인 노역자들을 강제 동원해 3개월 만에 완성했다. 3면이 바다에 접하고 유일하게 서북쪽만 뭍으로 이어진 천혜의 지형을 활용했다. 바닷물을 끌어들여 성 전체를 완벽하게 보호하는 해자(垓字)로 만들고 동쪽 바닷가에는 500여 척의 전선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선창까지 두었다.
나는 성터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문화관광 해설사 장진배씨와 만났다. 봄을 재촉하려는 듯 그의 옷 색깔이 봄의 전도사 같았다. 해설사는 ‘정왜기공도(征倭紀功圖)’부터 설명했다. “그림 속에 그 당시의 전투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 그림은 1974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게리 레드야드(Gari Ledyard) 교수에 의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필자의 본능적인 궁금증이 발동한다. “이 그림은 누가 그렸나요?”
“명나라 종군 화가가 그린 것입니다.”
기록은 중요했다. 그림 한 장을 통해서 당시 군대의 배치와 규모에 대한 이해를 완벽하게 할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해설사를 따라서 성터로 올라갔다. 성터에는 역사의 아픈 흔적들이 듬성듬성 남아 있었다.
해설사는 성(城)의 복원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했다. “이 성터는 2006년부터 일본의 기술자를 불러 복원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성은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돌을 쌓습니다. 일본의 성은 기초없이 바로 쌓아 올립니다.” “입구에 있는 화장실의 물이 지하수입니다. 이 성 안에서 물을 자급자족할 수 있었던 것도 성을 세우는 데 있어서 좋은 여건 중의 하나였을 것입니다.”
해설사는 하나라도 놓지지 않으려는 듯 계속해서 말을 하면서 천수기단(天守基壇)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이곳은 천수각이 세워졌던 곳입니다. ‘정왜기공도’를 보면 5층 규모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천수기단도 오랜 세월 석축이 흐트러지고 일부가 무너져서 보수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천수기단 위에 올라서 사방을 바라보았다. 제철소가 들어서고 집이 지어지는 등 전쟁터였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400년 세월이 흘렀으니 당연한 일이리라. 해설사는 동서남북을 가리키며 조선, 명나라, 왜군의 배치에 대해서 설명했다.
나와 함께 순천왜성을 돌아본 미요씨는 이렇게 소감을 피력했다. “일본인의 입장으로서도 치욕의 역사를 복원한 순천시에 감사드립니다.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었던 그 당시의 상황을 제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인에게도 많은 교훈이 될 것 같습니다. 침략은 욕심에서 비롯되니까요.”
정왜기공도(征倭紀功圖), 정유재란 당시 순천왜성 주변 군대 배치와 규모 완벽하게 알려줘
해설사가 설명한 ‘정왜기공도’에는 순천왜성 전투와 노량 해전이 그려져 있다. 두 전투는 정유재란 최대 전투였다. 명나라 군대의 종군화가가 당시 전황을 현장에서 그렸다. 정왜기공도는 왜를 정벌한 공을 기념한 그림이라는 뜻이어서 ‘정왜기공도권(征倭紀功圖卷)’으로 불린다.
명나라의 시각으로 임진왜란을 묘사한 그림으로 조선의 시각에서 그린 ‘평양성 탈환도’, 왜의 시각으로 그린 ‘울산성 전투도’와 함께 조·왜·명이 등장하는 임진왜란 관련 세계 3대 그림이다. 그러나 진품 그림의 소재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그림을 밑그림으로 삼아 19세기에 6폭짜리 병풍 2점에 다시 그린 그림이 ‘정왜기공도병(征倭紀功圖屛)’이다. 건물과 배, 인물 묘사가 중국풍이고, 금가루를 뿌리거나 청색을 강하게 사용하는 등 일본식 회화기법이 쓰인 것으로 미루어 일본에서 19세기에 다시 그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왜기공도병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kvkpTX0yjjs
병풍 2점이 한 세트로 구성된 병풍 그림은 1900년대 초 주일 네덜란드 공사가 일본에서 구입해 유럽으로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다. 병풍 2점 중 순천왜성 전투 뒷부분에 해당하는 한 점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앞부분 한 점은 스웨덴 동아시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12년 영국 딜러를 통해 사들였다. 그림 크기는 174×374㎝다.
병풍 그림은 화면의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시간·공간 순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1598년 9~10월의 순천왜성 전투,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해전, 남해도 소탕작전을 마치고 명나라 군대가 조선 조정과 명 황제에게 보고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정왜기공도권’의 존재는 1974년 미국 컬럼비아대 게리 레드야드 교수의 논문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 한국에는 1978년 ‘신동아’ 12월호에 게리 교수가 <임진정왜도의 역사적 의의>라는 논문을 기고하면서 알려졌다. 당시 게리 교수는 정왜기공도권 원본을 촬영한 11장의 사진을 신동아에 소개했다. 게리 교수 역시 원본을 못본 상태에서 사진만을 입수해 소개했다.
이순신 장군 사당에 고니시 유키나가의 비도 있어
성터를 돌아본 우리 일행은 이순신 사당인 충무사로 갔다. 거기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고니시 유키나가의 비(碑)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석에 실린 글을 그대로 옮긴다.
<이 비석은 정유재란 당시 소서행장이 순천왜성에 주둔했던 것을 기리기 위해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일본군이 성내 천수대에 설치하였으나, 광복 이후 지역 주민들이 넘어뜨려 주변 농경지에 있던 것을 해룡면 사무소에 보관해 오다가 이곳으로 옮겼다. 충무공의 얼이 깃들어 있는 이곳에 비를 옮긴 이유는 임진왜란과 같은 전란을 후손들이 다시는 겪지 않도록 교훈을 주기 위함이다.>
순천시의 고뇌의 흔적이 들어있는 글이었다. 이 비는 일제 강점기 시절 하야시 센주로(林銑十郎, 1876~1943) 당시 육군 중장이 세웠다. 후일 그는 33대 일본 총리가 됐다. 유비무환이라고 했던가.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대우건설과 팬택에서 30여 년 동안 홍보업무를 했다. 2008년 홍보컨설팅회사 JSI 파트너스를 창업했다. 폭넓은 일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으며 현지에서 직접 보고 느낀 것을 엮어 글쓰기를 하고 있다. 저서로 <현해탄 파고(波高) 저편에> <홍보는 위기관리다> <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장편소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