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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백패커] 눈 내린 강원도 선자령에서 하룻밤… 눈 위 텐트질은 백패커 모두의 소망

by 돌고래

 

지난 며칠간 마음 속으로 그토록 고대했던 눈발이 날렸다

지난 겨울은 유난히 눈이 적게 내린 겨울로 기록될 듯싶다. 작년 12월 눈 몇 번 내린 것으로 겨울 적설량을 대신했다. 백패킹 이야기하면서 웬 눈타령? 하실 분들도 있을 듯. 하지만 백패커들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겨울 텐트질과 눈을 따로 떼어놓지 못한다. 열이면 아홉은 눈속에 텐트 치는 그림에 고갤 끄덕이시리라.

서설이 너무 길었다. 이번 선자령 1박 산행은 지난 겨우내 가졌던 눈 위 텐트질에 대한 갈망을 조금은 해소시켜 준 그런 선물이었다. 산행 당일 선자령 부근의 기상예보는 눈비 올 확률 60%, 내가 도착할 시간대인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 구간 예보다. 눈이 반드시 내릴 거라는 자기암시를 하면서 산행 준비물을 챙겼다.

차를 주차하고 산행 짐 챙길 때쯤 온도가 많이 내려가서 무척 쌀쌀했다. 넥 워머(neck warmer)를 착용하자 목 보온이 되어선지 한결 추운 것이 덜하다. 정상까지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국사성황당에서 정상까진 1시간 반 거리다. 아무리 박짐을 멨다고 해도 힘든 산행은 아니다. 하지만 햇볕에 녹아 질퍽거리는 진창길은 정말이지 어떤 짐보다 힘들었다. 길에서 만난 한 산객은 “메기 많이 잡으라”는 농을 남기고 하산한다.

처음엔 진창길이었다.

 

전체 노선의 3분의 1쯤 걸었을까. 지난 며칠간 마음 속으로 그토록 고대했던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진창은 하얀 눈으로 덮이고, 발걸음은 여전히 진흙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즐거웠다. 온몸에서 새어 나오는 흥으로 발걸음은 가벼웠고 등짐 무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눈발은 소복소복 내리는 함박눈이라기보다는 바람과 함께 맹렬하게 날리는 눈보라였다. 쏟아지는 눈보라 속에서도 웃음이 입가를 떠나지 않았다. 선자령 정상 부근에선 거의 수평으로 몰아치는 눈보라에 눈을 못뜰 지경이었지만 그 즐거움은 온몸을 가볍게 만들었다.

눈이 내리더니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갑작스럽게 먹구름 물러나고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정상에 우뚝 세워진 ‘백두대간선자령’ 표지석이 눈보라에 흐릿하게나마 가렸다가 보였다가를 반복하는가 싶더니 갑작스럽게 “짜장!”하며 먹구름이 물러나고 세상이 밝아졌다. 더구나 파란 하늘이었다. 천지조화의 신이 정말 있을까?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눈보라가 몰아쳐서 주위를 둘러볼 수조차 없었는데 이렇게 맑고 파란 하늘이라니!

백두대간선자령 표지석

 

눈 온 뒤라 체감온도는 극도로 떨어졌다. 휴대폰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 감각은 거의 없어진 듯하고, 곱아서 통증까지 몰려온다. 하지만 내 두 눈에 보이는 자연의 오묘함은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누르게 만든다. 성능 좋은 카메라를 갖고 싶은 욕구가 이렇게 불덩이처럼 치솟는 것도 참 오래간만이다.

하산하다 숲속 적당한 곳에 자리를 펴고 하룻밤을 보냈다. 그렇게나 원하던 눈 위의 텐트질이다. 적설량이야 5㎝도 안되었지만 그래도 어딘가. 떠나오기 전 서울에서 매화와 물오른 버들가지 보고 봄봄 노래하던 내가 아니던가.

선자령 전경

 

겨울 백패킹은 걷는 것을 제외하고 대부분 활동은 텐트 안에서 이뤄진다. 이번 여행처럼 2명이상이 가게 되면 서로 역할 분담을 통해 배낭에 가져갈 물건들을 분배한다. 예를 들면 나는 솔로텐트, 동행자는 쉘터를 겸한 텐트 이렇게 분배한다.

그것은 추위 때문에 텐트 안에서 먹고 대화하고 잠자고 하는 모든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솔캠이 아닌 둘이상의 산행에선 쉘터 또는 2~3인용 사이즈의 텐트가 필요한 것이다. 짐 배분을 위해서 쉘터 또는 큰 사이즈 텐트를 가져가는 백패커의 준비물 중 일부는 다른 사람이 대신한다.

이번에 우리는 1인용 텐트와 2~3인용 텐트 2개를 준비하면서, 1인용을 가져간 내가 가스와 리엑터를 준비하는 방식으로 짐배분을 했다. 참고로 리엑터는 동계용 백패킹 용품으로 텐트나 쉘터 안에서 보온을 유지해 주는 소형 난방용 스토브를 말한다.

 

텐트질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는 일출을 보는 것

산에서 텐트질이 주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보는 것이다. 막힘없는 산 정상에서야 먼데서 솟아오르는 둥근 불덩어리를 가슴으로 담는다지만, 숲에서 나무사이로 갈라쳐 비춰오는 햇살의 움직임을 쫒아 보는 것도 꽤 그럴 듯한 일출 구경이다. 이번에도 해가 떠오르는 윗부분은 붉게 물든 띠로 펼쳐지고 그 아래로는 세로로 난 살들이 겹겹이 서 있었다. 그 사이로 밝고 맑은 기운들이 흘러드는 걸 느끼면서 황홀해했다.

나무사이로 갈라쳐 비춰오는 햇살의 움직임을 숲에서 쫒아 보는 것도 꽤 그럴 듯한 일출 구경이다.

 

어느새 차가운 아침 기온에 손끝이 아려올 즈음에 간단한 아침식사와 숙박지 정리가 시작된다. 하룻밤을 허락해준 선자령 사방신들게 고마움을 표하고, 이제 속세로 내려가는 시간. 내려오면서 동시에 나온 말, “곗돈 탓어… 우린…” 그리고 옆 산행지기에게 당신의 복을 나에게까지 나눠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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