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산업문명의 상징’ 에펠탑 완공

‘철의 마술사’ 구스타프 에펠이 활동하던 19세기는 하늘을 향한 인간의 꿈이 도처에서 꿈틀거리던 시기였다. 마침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고 프랑스의 산업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한 파리국제박람회가 1889년에 개막될 예정이었다. 박람회를 빛낼 건축물 설계에 700여 개 작품이 응모했고 에펠의 설계안이 최종 채택됐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에펠의 설계안이 공개되자 구노, 모파상, 졸라 등 프랑스의 유력 문화계 인사 300여 명이 반대 탄원서를 냈다. ‘과학과 산업의 승리’라는 기술자들의 옹호와는 달리 예술가들은 ‘추악한 철덩어리’ ‘철골 괴물’이라고 헐뜯었다. 1887년 1월 28일에 공사가 시작돼 25개월 간의 공사 끝에 1889년 3월 31일 완공된 에펠탑은 당시 최고건물보다 2배나 높았고, 1930년 뉴욕 크라이슬러 빌딩이 세워지기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었다. 250만 개 나사못으로 1만 5000여 금속조각을 연결시킨 에펠의 공법은 ‘산업문명의 상징’ 그 자체였다. 계단 1652개, 높이 320.75m(안테나 포함), 무게는 7000t이나 됐다.

‘파리의 귀부인’이라고 불린 에펠탑이 완성되자 시인 베를렌은 에펠탑이 보기싫다며 길을 돌아다녔고, 소설가 모파상은 자신의 기념상이 에펠탑을 보지 못하도록 등을 돌려 세웠다. 모파상은 “흉측한 에펠탑을 안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며 에펠탑의 식당을 자주 찾기도 했다. 20년간 존속한다는 조건으로 건립된 터라 1909년 헐릴 위기에 처했으나 통신안테나 설치라는 새로운 용도 덕에 요절을 면해 라디오(1918년)와 TV(1957년) 안테나가 이곳에 설치됐다.

‘귀부인’이라도 비만의 고통은 예외가 아니어서 1981년 2월 대대적인 다이어트가 시도됐다. 7000t의 몸무게가 1만 1000t으로 늘어났으니 당연히 군살을 빼야했다. 콘크리트로 된 전망대를 강철제로 바꾸고 엘리베이터를 전기식으로 교환해 체중을 1000t이나 줄였다. 2017년 9월 3억 번째의 손님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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