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서울지역 중학입시 ‘무즙’ 문제 파동

 

‘엿을 만들때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은?’ 1965년 12월 7일 실시된 서울지역 전기 중학입시 시험에 나온 자연과목 18번 문제 제목이다. ‘디아스타제’가 정답으로 발표되자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무즙’으로도 엿을 만들수 있다며 들고 일어섰다. 사태가 확산돼 서울시 교육위원회가 18번 문제를 백지화했다가 다시 둘 다 정답처리한다고 발표하자 이번에는 ‘디아스타제’를 정답으로 고른 학부모들이 항의농성을 벌였다. 이들의 항의로 서울시 교육위가 다시 원래대로 채점하겠다고 번복하자 ‘무즙’을 정답으로 골라 경기중 등 명문교에 낙방한 수험생 42명(4명은 중도 소송취하)이 소송을 냈다. 학부모들은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고물까지 묻혀오고 찬합에 무즙을 가득 담아오는 등 희한한 증거자료를 제출하며 재판에 임했다.

1965년 3월 30일, 서울고법 특별부가 ‘무즙도 정답으로 보아야 하므로 전기중학 입시에서 불합격한 38명을 합격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판결함으로써 논란이 수그러들 것 같았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불거져 시끄러웠다. 승소한 38명의 학생에게만 전학을 허가한다는 발표 때문이었다. 정답을 ‘무즙’으로 썼으나 소송을 걸지 않아 혜택을 받지 못한 370여 명의 학부모들이 발끈한 것은 당연했다. 특히 처음 소송을 냈다 시교위 간부의 권유로 중도에 소송을 취하한 4명 학생들의 학부모는 더욱 심하게 반발했다.

이 와중에 승소한 학생들이 전학하는 틈을 타 15명이 부정입학했다가 들통나는 일도 있었다. 부정입학 관련자 중에는 청와대 정무비서관 민충식과 공보비서관 박상길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부는 서둘러 이들을 해임했지만 파문은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개입해 문교부 차관, 문교부 보통교육국장, 서울시교육감 등의 사표를 받으라고 지시했다. 결국 청와대 비서실장, 문교부 장·차관, 서울시 교육감 등 8명이 옷을 벗었다. 최종적으로는 38명의 학생에게만 전학을 허용하는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나면서 ‘무즙 파동’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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