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다이아몬드 왕 세실 로즈 사망

19세기 후반, 아프리카 남쪽 끝에서 다이아몬드 광맥이 발견되자 17세 영국 청년 세실 로즈도 그곳으로 건너갔다. 그 역시 남들처럼 다이아몬드와 금 채굴사업에 뛰어들었고 뛰어난 사업수완으로 곧 백만장자가 됐다. 1887년에는 오늘날까지도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을 좌지우지하고있는 ‘드 비어사’를 설립하고 이후 몇 년만에 세계 다이아몬드 물량의 90%를 공급하는 벼락부자가 됐다.

남아프리카 재계 1인자에 오른 그는 남다른 야심을 키웠다. 아프리카 최남단 케이프타운에서 북쪽의 카이로까지 철길을 잇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야망을 키우며 케이프 식민지의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하고 1890년 37세 나이로 케이프 식민지의 총독까지 올랐다. 영토를 넓혀 영국인에는 아프리카 식민지 개척의 영웅이었지만 이 과정에서 원주민들로부터 땅을 헐값으로 빌리거나 사들였기 때문에 아프리카 원주민들에는 불평등 계약과 허위계약으로 온갖 재물을 빼앗은 사기꾼이었다.

그에게 트란스발은 꿈을 가로막는 방해물이었다. 트란스발이 케이프 식민지와 그가 세운 ‘로디지아’ 사이에 있어 영토확장을 가로막는 데다 1886년에 발견된 금광으로 세계 제1의 황금국가로 번영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트란스발은 네덜란드에서 이주한 보어인이 세운 나라였다. 로즈는 급한 마음에 본국 정부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트란스발을 침공했으나 600명의 군인들이 포로가 되거나 죽는 바람에 국제적인 비난만 샀다.

궁지에 몰려 총독자리를 내준 로즈의 말년은 불운했다. 명예도 잃고 몸까지 쇠약해져 1902년 3월 26일 49세로 숨을 거뒀다. 다행히도 유산 대부분이 옥스퍼드대 로즈 장학기금으로 헌납돼 그는 황금에 눈이 어두웠던 사람이 아니라 ‘영국의 세계경영’을 꿈꾼 거인으로, 국제적인 육영사업의 선구자로 재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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