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대영제국 기반 닦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 사망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세살 때 친모가 간통과 반역죄로 참수당하고 수개월 후 그 역시 의회로부터 사생아로 지목받아 순탄치 않은 성장기를 보냈다. 런던탑 유폐와 반역을 꾀한다는 근거없는 의혹을 묵묵히 이겨내며 그가 왕위에 오른 것은 25세 때인 1558년이었다. 아버지 헨리 8세가 죽고 2명의 이복형제들이 엘리자베스보다 먼저 차례로 왕위에 올랐으나 이들은 영국에 신·구교 간의 갈등만 키운 채 각각 6년, 5년 만에 죽고만다.

막상 즉위는 했어도 극심한 종교분쟁, 침체된 경제, 약화된 왕권이 엘리자베스 앞에 놓여있었다. 스페인·프랑스 등 인접 국가들과의 적대적인 관계도 간단치 않았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위협에 당당히 맞서는 용기와 단호한 결단력, 과감한 추진력의 소유자였다. 먼저 국왕을 영국 교회의 ‘유일 최고의 수장(首長)’으로 내세워 교황의 주권을 부인하는 ‘수장령’을 부활시키고 가톨릭과 청교도를 억압해 종교통일을 꾀했다.

분노한 교황들이 그를 파문하고 살해까지 사주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오히려 그의 왕위 후계자이자 가톨릭교도인 스코틀랜드 메리여왕의 참수를 묵인하며 왕권을 안정시켜 나간다.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메리의 처형을 구실로 무적함대를 동원해 영국 해군과 격돌했으나 자멸만 재촉했을 뿐 영국에 오히려 세계최강으로 발돋움하는 기회만 주고 말았다. 1999년 뉴욕타임스는 1603년 3월 24일 재위 45년 만에 숨진 엘리자베스를 ‘지난 1000년간의 최고지도자’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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