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방정환 잡지 ‘어린이’ 창간

1923년 3월 20일, 방정환이 ‘어린이’ 제목의 잡지를 창간했다. ‘어린이’는 방정환이 처음 만든 말은 아니지만 그가 ‘어린이’ 이름의 잡지를 발간함으로써 이후 ‘어린이’가 보편화되었다. 그전까지는 동몽(童蒙), 아동, 소년, 아이들로 불렸다.

어린이에 눈높이를 맞춘 편집으로 시작부터 어린이들의 관심을 끌었던 잡지는 이후 동요 ‘고향의 봄’, 동화 ‘호랑이 곶감’, 동시 ‘까치까치 설날’ 등을 실으며 아동문학의 요람으로 자리잡아 나갔다. 또 고한승·마해송·윤극영·이원수 등 이른바 1세대 아동문학가들이 활약하는 터전이 됐고, 이 땅에 아동문학이라는 근대적 문학장르를 태동시켰다. 12년 동안 어린이들의 정서교육에 앞장서다가 1934년 7월 폐간됐다. 해방 후인 1948년 5월 고한승이 속간했으나 1년 반 만인 1949년 12월 통권 제137호로 폐간됨으로써 영영 자취를 감췄다.

방정환은 32세로 요절할 때까지 어린이를 위해 삶 전체를 바쳐온 어린이운동의 선구자였다. 그는 어른들에게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치어다 보아주십시오”라며 어른세계의 주변에 만 머물렀던 어린이를 어른과 동등한 인격체로 끌어올린 주역이었다. 그의 어린이 사랑은 천도교와의 만남을 계기로 꽃을 피웠다. 천도교 교주 손병희의 셋째딸 손용화와 결혼한 것은 방정환에게도 어린이들에게도 다행이었다.

장인의 뒷받침으로 어린이운동도 탄력이 붙어 5월 1일에는 ‘어린이날’을 제정했다. 이날 서울거리에는 어린이들의 행렬이 이어졌고 골목마다 ‘오늘은 어린이날’이라는 전단 수 만장이 뿌려졌다. 당시 조선일보는 ‘전조선(全朝鮮)에 대선전(大宣傳)’이라는 제목으로 “가급적 일을 시키지 말고 새옷을 입히며… 서양사람의 크리스마스처럼 선물을 주자”는 기사를 실어 ‘어린이날’의 의미를 부각시켰다. 신장염과 고혈압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간호사들에게 동화를 들려주는 등 동화처럼 살다 간 방정환은 숨을 거두면서까지 “우리 어린이들을 어떻게 하지”라며 걱정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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