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국내 정당 사상 최장수 정당인 민주공화당 창당

박정희 소장을 주축으로 한 군부세력은 5·16 쿠데타에 성공한 후 권력 창출을 위해 양면작전을 구사한다. 군부를 자기 사람 중심으로 재편하는 한편 계엄령과 각종 포고령으로 국회를 포함한 각종 정당·사회단체를 해산하고 집회·시위·결사를 막았다. 1961년 7월 3일 장도영 참모총장을 비롯한 44명의 군인들을 반혁명 음모로 체포하고 정군운동으로 40여 명의 장군과 2000여 명 장교의 옷을 벗겨 반대파들을 제거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1962년 3월 16일에는 초법적인 ‘정치활동정화법’을 제정, 구정치인 4374명의 정치활동을 금지시켰다.

이렇게 경쟁자들이 모두 떨려나간 무주공산에 이제 자신들의 깃발만 꽂으면 되었다. 정상적으로 정권을 확보하려면 선거가 필요하고 선거를 위해서는 정당이 필요했다. 창당은, 1961년 6월 김종필 주도하에 중앙정보부가 창설되고 같은 해 8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2년 내 군정을 끝내고 민정으로 이양하겠다”고 발표한 뒤부터 비밀스럽게 추진되었다.

창당 작업은 초대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이 주도했다. 그는 창당 도상(圖上)계획에 교수 등을 참여시키고 사무처 요원을 비밀리에 뽑아 교육시켰다. 1962년 12월 17일 국민투표로 제3공화국 헌법이 확정되자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판단해 1963년 1월 1일 그동안 묶여있던 정당·사회단체의 정치활동 금지조항을 해제시켰다. 그러나 1년7개월 동안 휴면기를 가졌다가 뒤늦게 스타트 라인에 선 기성 정치인들은 불리한 입장일 수밖에 없었다. 쿠데타 세력에도 진통이 없진 않았다. 김종필의 독주를 경계한 반(反) 김종필계의 거센 반발로 김종필이 중앙정보부장에서 물러나 창당 하루 전 “자의반 타의반”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외유를 떠난 것이다.

쿠데타 세력들은 1963년 2월 26일, 서울시민회관에서 창당대회를 열어 새로운 정당을 출범시켰다. 미국의 양대 정당 민주당과 공화당의 이름을 합해놓은 ‘민주공화당’이었다. 공화당은 이후 17년 동안 집권당으로 군림했으나 1979년 10월 박 대통령의 죽음과 함께 몰락의 길을 걸었다. 김종필을 새 총재로 삼아 재건의 몸부림을 쳤으나 1980년 10월 27일 헌법 부칙에 의해 자동해산되었다. 국내 정당사상 최장수 정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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