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팝 아트’ 거장 앤디 워홀 사망

미술은 20세기 중반에 접어들어 커다란 전기를 맞는다. 소수의 전유물로 여겨온 이전까지의 미술이 일반대중에까지 참여의 문을 넓힌 것이다. 이같은 미술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이가 ‘팝 아트’의 대표 작가 앤디 워홀이다. 그러나 앤디 워홀처럼 평생을 세인의 관심 속에 살았으면서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작가도 드물다. 생일조차 분명치 않아 사람들이 1928년 8월 6일로 합의할 정도다. 이해가 쉬울 것같은 그의 작품들도 여러 이미지가 한꺼번에 포개져 오히려 더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다.

그는 자신의 예술 뿐만 아니라 개성까지도 패션화해 팔았던 철저한 상업주의자였다. 상업적인 것이라면 일을 가리지 않았고 작업실을 ‘공장’으로 불렀다. 그는 대중매체가 대량복제해 내는 스타를 주요 소재로 삼음으로써 현대사회에서 대중매체가 차지하는 위력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했다. 마릴린 먼로, 엘리자베스 테일러, 엘비스 프레슬리 등 대중스타들을 작품속의 주요 소재로 다뤘고, 마오쩌둥이나 레닌같은 공산주의자에게서도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이미지를 끄집어내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그가 선보이는 스타들의 대중적 이미지는 일반인들에 ‘낯익은 것들’이라는 인상을 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도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문화주체라는 느낌이 들도록 했다. 그에게 ‘미술 자본주의의 전도사’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스타를 숭배하고 이용하면서도 그 자신 스타가 되기를 갈망해 하루에 3회 이상 파티에 참석하며 자신을 홍보하는데 남다른 수완을 발휘했던 스타 중의 스타였다. 20세기 미술사에서 그 만큼 논쟁을 불러 일으킨 작가도 없었다. 1987년 2월 22일 앤디 워홀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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