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폭력의 정당성 옹호한 맬컴 X 피살

“백인은 악마다!” 1959년 맬컴 X가 TV에 처음 등장, 백인을 향해 증오의 목소리를 토해내자 백인들은 물론 흑백통합을 주장해 온 흑인 민권운동가들까지 나서 그를 향해 ‘흑인 파시스트’ ‘테러리스트’라며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비폭력으로 흑인의 지위를 향상하고 흑백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공민권(公民權) 운동 만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알아왔던 상황에서 맬컴 X의 출현은 소수의 도시 빈민 흑인들을 제외하고는 온건파 흑인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왔다. 더구나 맬컴은 “인종주의자가 사라지지 않는 한 폭력을 포기할 수 없다”며 폭력의 정당성까지 옹호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KKK단에게 살해되고 이로인해 어머니까지 미쳐버린 맬컴의 성장기는 빈민가의 여느 흑인들과 다를 바 없었다. 갱단의 일원이 되어 마약을 팔고 강도짓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절도죄로 수감된 감옥생활은 맬컴을 새롭게 변모시켰다. 처음 접한 이슬람교는 죽는 날까지 술과 담배, 마약을 끊게 하고 지독한 난시가 될 정도로 읽고 또 읽은 책들은 흑인들의 비참한 현실을 일깨워 해주었다. 1952년 가석방 후에는 ‘맬컴 리틀’이던 본명을 ‘맬컴 X’로 개명했다.

이후 맬컴 X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호소력있는 스피치로 ‘아프로·아메리카통일기구(OAAU)’를 결성해 지지 세력을 넓혀나갔으나 그만큼 적도 증가했다. 1965년 2월 21일, 뉴욕 할렘에서 열린 OAAU 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던 맬컴에게 갑자기 뛰쳐나온 3명의 흑인들이 20여 발의 총탄을 발사했다. 절명. 39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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