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존 글렌, 미국인 최초로 우주 궤도비행에 성공

냉전이 최고조에 달하던 1957년 10월, 구 소련이 인류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하자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교육제도를 자성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군사기술까지 소련에 추월당할지 모른다는 우려감이 팽배했다. 이런 분위기가 반영되어 1958년 육해공군의 미사일개발계획을 하나로 묶은 미 항공우주국(NASA)이 발족되고 유인 비행을 목표로 한 ‘머큐리(Mercury) 계획’이 발표됐다. 존 글렌, 셰퍼드 등 유인 우주선에 탑승할 7명의 우주비행사도 선발했다.

소련이 가가린을 태운 인류최초의 유인 우주비행선 ‘보스토크 1호’를 발사한지 10개월 만인 1962년 2월 20일, 미국의 유인우주선 ‘프렌드십 7호’가 존 글렌 중령을 태우고 우주를 향해 날아올랐다. 앵커맨 월터 크롱카이드는 떨리는 목소리로 “가라, 어서 가라(Go, baby. Go)”며 장도를 축하했다. 우주선이 지구를 3바퀴 돌고 4시간 56분 만에 대서양 바하마 군도 부근에 무사히 착수(着水)함으로써, 미국은 우주탐사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됐고 이 자신감으로 달 착륙을 향한 인류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었다.

사실 존 글렌은 미국 최초의 우주비행사가 아니었다. 9개월 전인 1961년 5월 5일에 14분 47초동안 하늘을 날았던 셰퍼드 중령이 ‘최초’의 주인공이었으나 미국은 글렌을 최초의 우주비행사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셰퍼드의 비행이 탄도(彈道)비행인데 비해 글렌의 비행이 궤도(軌道)비행이었기 때문이다. 탄도란 발사된 탄환이 공중으로 날아가 목적물에 이르기까지의 길이나 곡선을 뜻한다.

셰퍼드는 탄도비행의 정점인 185㎞의 고공을 향해 날았다가 발사 8분 후 다시 대기권으로 진입해 귀환했다. 한국전에도 참전해 100여 차례나 출격했던 글렌은 미국인 최초로 우주궤도비행에 성공했다는 사실 말고도 로스앤젤레스∼뉴욕 간을 3시간 28분에 돌파(1957년)하는 신기록을 수립하고 77세라는 최고령으로 우주를 비행(1998년 11월)한, 비행에 관한한 기록의 사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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