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대한민국 제1차 통화개혁

6․25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1953년, 전쟁으로 인한 천문학적인 화폐발행으로 인플레가 날이 갈수록 가중되자 정부가 통화개혁에 발벗고 나섰다. 인플레로 경기가 침체되는 것도 문제였지만 “인플레를 막아야 원조하겠다”는 미국의 압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통화개혁은 1953년 2월 15일, 임시수도 부산에서 대통령령 제13호 긴급조치령으로 발표되었다. 골자는 2월 17일부터 ‘원’ 표시 통화의 유통을 금지하고 ‘환’ 표시 통화를 유통시키되 교환비율은 100원에 대하여 1환으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새 돈의 액면단위가 한자로만 ‘환’으로 되어있고 한글로는 ‘원’으로 쓰여 있어 인쇄가 잘못된 게 아니냐는 항의가 빗발쳤다. 이런 혼란이 초래된 것은 새로 발행된 신권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전인 1947년 미 군정청에서 미리 제조한 돈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군정청은 미국의 군사지원 자금으로 미국 재무부 인쇄국에 의뢰, 1환․5환․10환․100환․1000환 5종을 만들어 화폐개혁을 준비했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6․25 개전 초기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이 한국은행 금고에 보관되어 있던 이 신권들을 가져가지 않은 것이다. 통화개혁이 쉽게 단행될 수 있었던 것도 이 신권들이 온전히 보관된 덕분이었다.

화폐들은 1․4후퇴 때 전부 부산으로 옮겨졌다가 1953년의 화폐개혁 때 요긴하고도 긴급하게 사용되었다. 발표에 따라 모든 통화는 2월 17일부터 9일 이내에 금융기관에 예입해야 했고, 이 기간에 채권․채무액도 금융기관에 신고해야 했다. 대신 9일 동안의 생활자금으로 1인당 500환 한도내에서 신권으로 교환해주었다. 그러나 신고금액이 정부가 예상한 금액의 60%선에 불과하고 한동안 경제거래가 마비되어 물가를 폭등시키는 등 부작용이 너무 커 실패한 통화개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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