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추방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처녀작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문예지 ‘노비 미르’지 1962년 11월호에 실렸을 때 소련 사회는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큰 충격에 빠졌다. 스탈린 시대 강제수용소의 실태를 처음 소개한 작품 덕에 9만6000부가 발매된 ‘노비 미르’는 곧 매진되었고, 그후 두 차례에 걸쳐 인쇄된 85만부도 순식간에 동이 났다. 솔제니친의 한 친구는 “이 세계에는 3개의 핵폭탄이 있네. 하나는 케네디가, 하나는 흐루시초프가 갖고 있고 다른 하나는 자네가 가진 걸세”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당도, 당기관지 프라우다도 솔제니친에 대해 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바야흐로 ‘모스크바의 봄’이었기 때문이다. 솔제니친이 소설을 펴낼 수 있었던 것도 1956년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격하 발언이 몰고온 해빙무드 덕분이었다. 그러나 해빙의 시대는 오래 가지 못했다. 1964년 흐루시초프가 실각하고 브레즈네프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빙하기가 엄습했다. 솔제니친은 다시 반체제작가로 몰렸다. 1945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탈린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이미 ‘반체제’ 낙인이 찍혔던 그였다. 그때 솔제니친은 8년형을 선고받아 시베리아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혹독한 시절을 보내다 1953년 풀려났었다.

반체제 작가라는 이유로 작품을 발표할 수 없게 되자 솔제니친은 ‘암병동’(1967) ‘연옥 속에서’(1968) ‘1914년 8월’(1971) 등을 해외에서 출판했다. 서방세계는 노벨상(1970년)을 안겨주며 그를 영웅으로 치켜세웠지만 그의 조국 소련은 감시와 탄압의 끈을 더욱 세게 조였다. 그런데도 솔제니친은 1973년 12월, 파리의 YMCA 출판사에서 ‘수용소 군도’ 제1권을 발표했다. 3차례나 소환명령을 내렸으나 끝내 솔제니친이 불응하자 소련 당국은 솔제니친을 국가반역죄로 체포해 소련시민권을 박탈했다. 1974년 2월 12일이었다. 그리고 이튿날 해외추방령을 내렸다. 곧 돌아갈 것으로 생각한 그의 망명생활은 20년이나 계속되었고 1994년 5월 27일이 되어서야 그리운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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