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2차대전 연합군, 독일 드레스덴 융단폭격

2차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즈음, 독일군이 동부전선에서 소련군에 밀리며 패색이 짙어지자 독일인들이 고도(古都) 드레스덴으로 몰려들었다. 드레스덴처럼 유서깊은 도시는 연합군이 폭격을 안할지도 모른다는 한가닥 기대 때문이었다. 전쟁 전에 63만이었던 인구가 어느새 두 배로 늘어났다. 베를린 남쪽 엘베강가에 있는 드레스덴은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츠빙거 궁전과 프라우엔 교회를 비롯, 역사가 오래되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즐비해 ‘엘베강가의 피렌체’ ‘중부유럽의 파리’로 불리던 곳이다.

1945년 2월13일 밤10시15분, 독일인들의 기대와 달리 영국 공군의 랭커스터 폭격기 800여 기가 드레스덴 중심가에 폭탄을 쏟아부어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아비규환이었다. 14일 정오, 이번에는 미 폭격기 B-17 450대가 65만 발의 소이탄을 투하, 도시를 초토화시키면서 찬란했던 400년 역사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폭탄으로 카펫을 깐다’는 ‘봄벤테피히(Bombenteppichㆍ융단폭격)’란 단어는 이때 생겨났다. 화재는 4일동안 계속됐고, 20㎢의 고색창연했던 도시는 폐허가 됐다. 사망자 만도 6만∼13만명을 헤아렸다.

이때부터 독일인들에게 ‘D-데이’는 ‘노르망디 상륙일’이 아니라 ‘드레스덴(Dresden) 폭격일’을 의미했다. 개전초기 독일이 저지른 런던 대공습에 대한 앙갚음이라고도 하고, 전범국가 독일에 영원히 지울수 없는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 폭격했다고는 하지만 피해가 너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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