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러일전쟁 발발

↑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러시아 극동함대 주둔지인 중국 뤼순항을 공격하기 전, 대포 시험발사를 하고 있다.

 

20세기 초, 동아시아 끝자락에서 조용히 때를 기다려온 일본이 마침내 제국주의 열강과 본격적인 각축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특히 러시아와는 한반도와 만주지방을 사이에 두고 격돌이 불가피했다. 충돌을 피하기 위해 양국은 1903년 10월부터 협상 테이블에 앉았으나 동상이몽인 터라 좀처럼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러시아가 보급품을 지원해 줄 시베리아 횡단철도 개통을 기다리며 협상을 끌자 일본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국에 불리하다는 사실을 알고 비상대책을 강구했다. 1904년 2월3일 협상이 또 결렬되자 일본은 기다렸다는 듯 4일 밤 어전회의를 열어 대(對) 러시아전쟁을 결의했다. 그리고 2월7일 마침내 일본 연합함대가 중국 뤄순(旅順)으로 향했다. 8일 밤10시 쯤, 일본 연합함대가 뤄순항에 정박 중인 러시아 태평양함대에 기습포격을 가하면서 세계를 놀라게 한 러일전쟁의 막이 올랐다.

뤄순항을 봉쇄한 일본은 10일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러시아 함대가 뤄순항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동안 일본 육군도 한반도를 경유해 북상함으로써 육지 쪽에서도 뤄순을 고립시켰다. 5월30일, 뤄순항이 내려다 보이는 203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일본군의 총공세가 시작됐다. 그리고 그해 12월 말 마침내 일본군이 뤄순항을 점령했고, 뤄순 러시아군사령관은 1905년 1월1일에 백기를 들었다.

러시아군 3만1000명, 일본군 5만8000명이 희생된 이 전쟁을 통해 일본이 얻은 것은 외견상 뤄순 뿐이었지만 세계 열강과 어깨를 견줄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야말로 최대 전리품이었다. ‘그들만의 리그’에 동양의 소국이 뛰어들었으니 열강들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전쟁은 9월5일 미국 포츠머스에서 강화조약이 체결됨으로써 막을 내렸으나 일본은 이 전쟁을 통해 세계사 전면으로 뛰쳐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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