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베르디 작곡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한국판 ‘춘희’의 국내 초연 그리고 김자경

↑ 한국 최초 오페라 ‘춘희’의 초연 장면

 

1948년 1월 16일, 한국 최초 오페라 ‘춘희(椿姬)’가 명동 시공관에서 초연됐다. 의사이자 성악가였던 이인선이 제작·번역·남자주인공의 1인3역을 소화했고, ‘한국 오페라의 대모’ 김자경이 마금희와 함께 여주인공 ‘비올레타’역을 맡아 한국최초의 ‘프리마 돈나’가 됐다. 연출은 서항석이, 지휘와 연주는 임원식과 고려교향악단이 맡았다. 5일 동안 전회(10회) 매진을 기록하며 무성한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숫자에 밝지 않은 제작자는 집과 피아노를 처분해야 했다.

한번 ‘춘희’는 ‘영원한 춘희’였다. 김자경에게 오페라에 눈을 뜨게 한 것도 ‘춘희’였고, 1968년에 창단한 ‘김자경오페라단’의 첫 작품도, 그가 숨지기 3개월 전 마지막으로 공연한 것도 ‘춘희’였다. 김자경은 ‘춘희’가 이어준 오페라와의 인연으로 오페라에 살고 죽는 ‘오생(生) 오사(死)’ 인생이 됐고, “오씨 성에 이름이 페라인 오서방과 재혼했다”며 평소 오페라와의 인연을 강조했다.

알렉산더 뒤마 피스의 소설과 희곡 제목이기도 한 ‘춘희’를 원작으로 베르디가 오페라로 만든 것이 ‘길 읽은 여인’이라는 뜻의 ‘라 트라비아타’이다. ‘동백 아가씨’를 뜻하는 소설의 원 제목은 프랑스어로 ‘La dame aux camélias’다. 소설 속 여주인공이 동백꽃을 좋아하자 그를 쫓아다니는 남성들이 그녀에게 동백꽃을 선물한데서 연유한다. 그런데 이것을 일본인이 ‘춘희(椿姬)’라 의역하고 우리도 그대로 따르면서 이 땅에도 ‘춘희’로 정착됐다. 춘(椿) 자는 우리나라에서는 참죽나무를 뜻하지만, 일본에서는 동백나무라는 뜻도 있다

‘라 트라비아타’가 초연된 것은 1853년 3월 6일 베네치아에서였다. 하지만 여주인공 비올레타역을 우람한 체구의 배우에게 맡기는 바람에 안타까움과 슬픔이 우러나와야 할 대목에서 오히려 웃음이 터져나와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다. 이듬해 5월 6일 재공연에서 대성공을 거둬 비제의 ‘카르멘’과 함께 공연횟수가 가장 많은 오페라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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