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워싱턴 국제공항, 로널드 레이건 국제공항으로 개명

1998년 2월6일, 87번째 생일을 맞은 이날 레이건 전 미대통령에게 반가운 선물이 전달됐다. 1941년 6월16일에 개항한 워싱턴 국제공항을 로널드 레이건 워싱턴 국제공항으로 개명한다는 법안이 공표된 것이다. 법안은 2월4일 미 상·하 양원을 통과하고 그날밤 클린턴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확정됐다.

1980년대는 보수의 시대였다. 시대의 문을 연 것은 1979년의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였지만 실질적으로 그 시대를 이끈 것은 1980년에 대통령으로 당선된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뒤이어 1982년 헬무트 콜 독일 총리와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까지 등장함으로써 세계는 바야흐로 보수화 물결로 출렁거렸다. 훤칠한 키와 시원스런 미소에 근육질 몸매까지 갖춘 할리우드 배우 출신의 레이건은 취임과 함께 강한 미국을 주창했다.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그는 1983년 ‘별들의 전쟁’으로 불리는 전략방위구상(SDI) 정책을 시작하고 1984년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지칭하며 압박했다. 함께 맞드라이브를 걸며 무한군비경쟁에 뛰어들었던 소련은 결국 힘의 소진으로 붕괴의 길을 걸어야 했다.

레이건은 재임 8년동안 냉전종식의 기틀을 마련하고 이른바 ‘레이거노믹스’라 불리는 경제정책으로 미국 경제를 회생시킨 것으로도 평가를 받았지만 무엇보다 베트남전 패배와 경기침체 그리고 워터게이트 사건의 악몽으로 절망감에 사로잡혔던 미 국민들에게 낙관주의를 되살려주었다는 점에서 그는 20세기 후반 최고의 대통령이었다. 1983년부터 인플레이션이 꺾이고 고용이 늘면서 2차대전 이후 최고 팽창기를 맞을 수 있었던 것도, 1990년대 미국이 경제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것도 사실상 그가 추진한 경제정책의 산물이었다.

퇴임후 사그라들던 레이건의 인기가 되살아난 것은 1994년 11월5일 ‘사랑하는 국민에게’라는 제목의 대국민 편지를 통해서였다. 자신이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고 스스로 공개한 그의 편지에 미국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이후 레이건의 인기는 상종가를 쳤고 미 전역에 로널드 레이건이 유행처럼 번졌다. 분명 레이건 본인이 사망후 25년이 지나야 기념물을 세울 수 있다는 법안에 서명(1986년)하고 아직 역사의 심판이 남아있어 성급하다는 일부의 지적도 있었지만 미국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항공모함도, 워싱턴 시내 연방정부 청사도, 신시내티 고속도로도, 캘리포니아주 법원청사도 레이건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2004년 6월5일 93세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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