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호찌민, 베트남 공산당 결성

 

호찌민(胡志明)은 20세기 최강대국 미국과 맞서 싸운 강철같은 의지의 소유자였다. 늘 검소한 옷차림과 따뜻한 웃음으로 사람들을 대해 사람들은 그가 주석이 된 뒤에도 그를 ‘호 아저씨’라 불렀다. 그는 한 전기작가의 말대로 ‘반은 레닌, 반은 간디’였다.

1890년 프랑스 식민지 베트남에서 태어나 18세 때 조세반대시위로 퇴학당하면서 호찌민의 지난한 혁명가의 여정이 시작됐다. 21세 때 조국을 등지고 프랑스로 건너가 2년동안 아프리카·인도·뉴욕·런던 등지를 전전하며 견문을 넓혔고, 1919년에는 파리평화회의에 참석, ‘베트남 인민의 8개항 요구’를 제출해 일약 베트남인들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1925년 중국에서 베트남혁명청년회를 결성하고 1930년 2월3일에는 홍콩에서 ‘베트남공산당’을 창당했다. 1941년, 30년만에 고향땅을 밟은 호찌민은 ‘베트남 독립동맹(베트민)’을 결성하고 주석 자리에 올랐다. 그 무렵부터 ‘깨우치는 자’라는 뜻의 ‘호찌민’으로 불렸다.

일본 패망 후 1945년 9월2일, 호찌민은 ‘베트남 민주공화국’을 선포하고 주석에 올랐으나 일본에 쫓겨났던 프랑스가 베트남으로 되돌아오자 호찌민은 힘의 열세를 깨닫고 타협을 선택했다. 1946년 3월6일, 결국 호찌민은 완전 독립이 아닌 프랑스연합으로 남는 협정에 조인하고 때를 기다리던 중 11월에 일어난 우발적인 사고로 프랑스군이 6000명의 베트남인을 학살하자 대불항전을 선언했다.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30년에 걸친 베트남전은 이렇게 막이 올랐다. 호찌민은 전쟁이 한창이던 1969년 9월3일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 79세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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